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국내 기업들이 현지 정권교체라는 변수로 고민하고 있다. 현지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는 기업의 사업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권 초기 인사나 시스템이 바뀌는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의 주요 광물 파트너 중 한 곳인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극우파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르헨티나는 과거 수십 년간 좌파 정권이 집권해 왔다. 급진적인 선거 공약을 내세운 밀레이의 승리는 향후 글로벌 정치 지형, 경제 정책,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당선 소감을 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르헨티나는 이른바 ‘하얀 석유’로 불리는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리튬 부국이다. 아르헨티나의 리튬 매장량은 약 220만톤(t)으로 전 세계 총 매장량의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올해 10월 기준 아르헨티나 리튬 매장량은 세계 3위, 연간 생산량은 4위로 집계됐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글로벌 에너지 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한국 정부는 아르헨티나와 리튬 등 핵심광물 분야 교역 및 투자 협력 강화를 논의해 왔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사업을 하는 기업은 포스코그룹이 대표적이다. 포스코는 2028년까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포 염호에서 연간 10만t 규모의 염수리튬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밀레이도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자원 개발 활성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지만, 그의 독특한 정치적 입장이 추후 현지 리튬 산업에 어떻게 반영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극단적 자유주의 정책을 강조하는 밀레이는 중앙은행 폐쇄, 페소화 폐지 및 미국 달러 도입 등을 공약으로 제시해 왔다.

아르헨티나에서 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소유권은 주(州)정부에 있고, 연방정부는 관련 법률 제정 권한을 갖고 있다. 연방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심 의사결정 권한은 사실상 주정부에 있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엇갈린 정책으로 기업들이 고충을 겪는 사례가 많다.

지난 6월 28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서 열린 염수 리튬 2단계 상공정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제공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밀레이의 극단적인 주장이 현실에서 실제 수용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밀레이는 자유시장주의적인 관점에서 자원 개발 분야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걸 지지하는 입장”이라며 “정무, 비즈니스 경험이 부족한 그가 환경단체, 지역사회 등 반발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밀레이의 반중 정서가 글로벌 리튬 공급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 이스라엘과 교역을 늘리고 중국과 거래하지 않겠다는 후보 시절 밀레이 선언이 실제 중국 기업에 대한 규제 등으로 이어질 경우 현지는 물론 글로벌 리튬 산업에는 지각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리튬 산업에서 중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달에는 폴란드의 정권교체로 방산, 원전 수출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 폴란드 총선에서 약 8년 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지난 정부 때 체결된 국방, 원전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가 예고된 탓이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배터리, 에너지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기업은 현지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는데, 친환경 정책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기조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만약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 규모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화당에서는 강경파를 중심으로 IRA 백지화까지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