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서 원익그룹 계열 장비업체들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기업은 연초 대비 주가가 5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주사 위에 지배기업을 둔 ‘옥상옥(屋上屋)’ 구조라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주인 이용한(69) 회장이 경영 전반을 이끄는 가운데, 옥상옥 구조는 2세 승계를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원익그룹은 이 회장이 1981년 원익통상(현 원익)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원익통상은 무역회사였는데 1985년 반도체용 석영(쿼츠) 제조사 한국큐엠이를 인수하며 반도체 부품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간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용 석영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해 삼성전자(005930) 등에 납품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후 한국큐엠이는 ‘원익석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 코스닥 상장했다.

그래픽=정서희

이후 이 회장은 IPS, 아토, 후너스 등 반도체, 패널 관련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을 키웠다. 원익그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대기업 협력사로 자리 잡았고, 반도체 투자 확대와 함께 이차전지 열풍이 불면서 관련 계열사가 주목받았다.

원익IPS(240810)는 반도체용 장비, 원익QnC(074600)는 반도체용 석영, 원익머트리얼즈(104830)는 반도체 생산용 특수가스, 원익피앤이(217820)는 배터리 장비 사업을 하고 있다. 원익그룹 계열사는 올해 상반기 기준 총 90개에 달하고 전체 시가총액은 3조원이 넘는다.

원익그룹의 가장 큰 숙제는 투명 경영이다. 원익그룹은 그간 최대 매출 회사인 원익IPS를 주축으로 하다 2016년에 지주사로 전환했다. 원익IPS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현 원익홀딩스(030530))로 분할했다. 이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지분을 원익홀딩스에 넘겨 지주사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일부 회사를 제외하면 반도체, 배터리, 헬스케어 등 대부분의 계열사가 원익홀딩스 아래에 있다.

지주사 체제에서는 통상 지주사가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지만, 원익홀딩스는 위에 또다른 지배기업이 있다. 6월 말 기준 원익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28.96%를 보유한 원익(032940)이다. 원익의 최대주주는 지분 38.18%을 보유한 이 회장이다. 호라이즌캐피탈도 8.15%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호라이즌캐피탈은 자본금 22억원으로 설립된 자산평가 회사다. 이 회장이 지분 전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합치면 이 회장 지분은 46%가 넘는다.

그래픽=정서희

원익의 연 매출은 1000억원 선이다. 원익IPS의 10분의 1 수준이며, 상장 계열사 중 가장 규모가 작다. 헬스케어에서 전체 매출의 60%가 나오고 석영 원자재, 조명 기기, 산업 자재 등 통상 사업과 전자부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에서 각각 20% 미만의 매출이 나온다. 찜질방, 글램핑 등 레저사업도 한다. 시가총액은 600여억원에 그친다.

원익은 지주사 지분 28.95%를 보유하고 있어, 이 지분만 넘겨받으면 원익그룹의 계열사 90개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 회장의 원익 지분 가치는 290억원가량이다. 여기에 증여세 40%를 더해도 400억원가량이다. 전체 시가총액 3조원이 넘는 계열사를 약 400억원에 물려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옥상옥 구조는 지주사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주사 체제는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기업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옥상옥 구조는 지주사와 지주사의 지배기업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 SK(034730)그룹은 과거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계열사 SK C&C를 통해 지주사인 SK를 지배했다. 최 회장은 당시 지주사 지분을 0.02%만 지녔고,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SK C&C 지분 43.43%를 보유해 옥상옥 형태로 그룹을 경영했다. 그러다 SK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2016년 4월 양 사 합병을 결정했고 SK C&C는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