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회사 한미반도체(042700)를 이끄는 오너 2세 곽동신(49)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24일 1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2만4000주)을 장내 매수했다. 곽 부회장이 직접 회사 주식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반도체 주가는 1년 전 1만3500원에서 지난 28일 4만7150원으로 250% 가까이 올랐다. 주가가 많이 오른 상황에서 곽 부회장이 주식을 추가로 매입한 것은 그만큼 기업가치 향상에 자신감을 보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창업자 곽노권 회장의 아들인 곽 부회장은 1998년 회사에 입사해 33세였던 2007년 일찌감치 경영 전면에 나섰다. 곽 부회장은 한미반도체 지분 35.53%를 가진 최대주주다. 곽 회장(9.29%)을 포함한 일가 지분까지 합치면 55.22%다. 곽 부회장은 계열사인 한미컴퍼니, 한미네트웍스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미반도체의 기업가치가 오른 이유로 ‘챗GPT(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같은 인공지능(AI) 열풍을 꼽는다. AI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지면, 핵심 칩으로 꼽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뿐 아니라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리는 광대역메모리(HBM)가 필요하다.

HBM은 고성능 AI 연산에 특화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로 꼽히는데, HBM을 제작하려면 열 압착 방식으로 여러 개 D램을 붙일 수 있는 TC본더(Bonder)가 필요하다. 한미반도체는 TC본더(Bonder)를 2016~2017년부터 개발해 생산 중이다.

그래픽=손민균

1980년 설립된 한미반도체는 지난 40여년간 MSVP(Micro Saw Vision Placement)라는 장비를 주력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패키지를 절단→세척→건조→검사→선별→적재해 주는 반도체 제조공정의 필수적 장비다. 현재 글로벌 MSVP 시장점유율 1위다.

회사는 올해 MSVP에서 TC본더를 주력 사업 축으로 전환하기 위해 생산여력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전 세계 MSVP 시장은 4000억원 규모이지만, 본격 개화한 TC본더 시장은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016360)은 AI 시대로 들어서며 수많은 업체들이 투자를 늘리고 있어 TC 본더 매출 기여도가 올해 91억원에서 내년 728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HBM 수요가 늘어날수록 이런 성장세는 가팔라질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곽 부회장은 TC본더 외에 6세대 이동통신(6G), 저궤도 위성통신 시대를 앞두고 전자파(EMI) 쉴드도 미래 먹거리로 육성 중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인 EMI 쉴드는 향후 전기차 등으로 용처가 확대될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계산이다. 아직은 회사 매출에 대한 기여도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곽 부회장은 최근 투자 성과로도 주목받는다. 곽 부회장과 한미반도체는 2021년 6월 당시 비상장사였던 반도체 전공정(열처리) 장비기업 HPSP(403870) 주식을 12.5%(375억원)씩 총 25% 매입하며 2대 주주에 올랐다. ‘프레스토제6호 사모투자합자회사’를 통해 HPSP를 지배하고 있는 경영 참여형 사모투자펀드인 크레센도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2020년 말 인수 제안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후공정을 잘하는 한미반도체가 전공정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경우 종합 반도체 전문 장비사로 몸집을 키울 수 있어 당초 한미반도체 측이 HPSP 지분 100% 인수를 검토했다가 결과적으로 안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HPSP가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뒤 한미반도체와 곽 부회장은 일부 지분을 매도해 현재 18.16%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8일 종가 기준 곽 부회장이 보유한 한미반도체와 HPSP의 지분 가치는 약 1조8760억원이다. 그는 이재용·홍라희·이부진(삼성전자(005930)), 이동채(에코프로(086520)), 이서현(삼성전자), 조정호(메리츠금융지주(138040)), 정몽구(현대차(005380)) 등에 이어 국내 주식 부호 14위다.

전방산업인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실적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해 매출 3276억원, 영업이익 1119억원을 기록했던 한미반도체는 올해 매출 2172억원, 영업이익 57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고객사 주문이 들어오면 제품을 제작하는데, 작년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중국의 주문이 급감했다”며 “제조업 특성상 고정비가 있는 상황에서 판매가 줄어드니 이익도 부진했다”고 말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AI 투자 열풍이 본격화된 만큼 한미반도체의 주력 제품인 TC본더의 매출 기여도가 커지는 2024년에는 매출 3427억원, 영업이익 117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