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들에게 더 좋은 제안(서비스)을 하려면 한국신용데이터는 장기적으로 독립된 회사여야 합니다. 매각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내년 실적을 기반으로 2024~2025년 상장을 목표로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신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신용데이터(KCD)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경영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난 김동호 대표는 “유니콘이 된 것은 사업의 모든 순간을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똑똑하게 만드는 일의 시작점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신용데이터는 가게 매출구조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캐시노트’를 중심으로, 포스(POS·출납기), 기업 간(B2B) 식자재 공급, 자영업자·소상공인 전용 커뮤니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캐시노트를 쓰는 사업장은 120만, 다른 서비스까지 합하면 전국 190만 사업장을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GS(078930), KB국민은행, 신한카드, 삼성화재(000810), 카카오(035720), LG유플러스(032640) 등으로부터 누적으로 1600억원을 유치했다.
한국신용데이터가 유니콘에 올랐다는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자금이 말라가면서 스타트업이 ‘투자 혹한기’를 겪는 중에 나와서 더 주목 받았다. 24세였던 2011년에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모바일 리서치 서비스 ‘오픈서베이’를 창업하면서 스타트업계에 진출한 김 대표가 2016년 ‘자영업자의 플랫폼’을 꿈꾸며 창업한 한국신용데이터 역시 성과를 낸 것 또한 관심을 받는다. 그는 “(성공의 비결은) 내 능력은 20%,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캐치해 발 빠르게 뛰어든 것이 80%였다”고 말했다.
-투자 혹한기에 유니콘으로 등극한 비결은.
“코로나 때 비대면(온라인)에 이어 사이버 세계에서 활동하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라는 키워드가 부각됐다. 그런데 우리는 땅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 아닌가. 한국신용데이터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실체가 있는 비즈니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식업자의 80%는 캐시노트를 쓰고 있다. 캐시노트는 실제로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캐시노트로 모은 사장님 고객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이유다. 비유하자면 카카오가 10년 전 이맘때 애니팡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회사란 걸 입증한 것과 비슷하다. 2012년 여름에 ‘애니팡(모바일 게임)’이 나왔다. 애니팡이 나오기 전인 2011년에 18억원이었던 카카오 매출은 올해 연결 기준 7조원 정도 된다. 카카오는 트래픽은 많지만 돈은 못 버는 회사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소비자를 많이 모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서비스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주력 서비스(캐시노트)는 무료인데, 한국신용데이터의 ‘애니팡’은 무엇인가.
“캐시노트를 이용하는 사장님들이 다 합쳐서 1년에 150조원어치를 구매한다. 이걸 가공해서 판매하는 게 연간 200조원, 그사이 모자란 운영자금으로 90조원을 조달한다. 400조원 이상의 경제적 기회가 매년 발생하는 것이다. 사장님들이 가게 장부만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때, 신용평가를 받을 때, 뭔가를 구매할 때, 결제할 때, 포스(POS)를 선택할 때 한국신용데이터가 제공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6월 초에 ‘캐시노트 마켓’이라는 탭을 추가했다. 식자재와 부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많은 가게 사장님들이 거래처를 트면 관행처럼 가격을 확인하지 않고 물품을 주문하고 추후 한 번에 거래 내역서를 받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가격을 공개하기 때문에 투명하고, 다양한 거래처를 선택할 수 있다.
7월에는 계열사인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사 ‘한국평가정보’가 정부로부터 신용평가업에 대한 인허가를 받았다. 전업 신용평가사가 생긴 것은 17년 만이다. 이 데이터로 국내 최대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323410), 국내 최대 보증보험사인 SGI서울보증이 개인사업자 대상 대출 심사를 하거나 할 예정이다. 이런 부가 서비스가 수익이 된다.”
-최근 결제대행업체(밴사) 파이서브의 한국 지사 ‘파이서브 코리아’도 인수했다.
“가게 운영에 필요한 포스나 결제망 등 여러 디지털 인프라에 관심을 갖게된 건 고객사가 50만~60만개가 넘어가던 2~3년 전부터였다. 소프트웨어로 시작했지만 가게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드리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운영도 보태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파이서브와 잘 맞을 수 있었던 건 재무적으로 팔고 끝나는 거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파이서브는 나스닥 상장사로 시가총액이 100조원쯤 되는 글로벌 대기업이다. 한국 지사는 우리가 100% 인수했지만, 본사가 한국신용데이터에 투자했다. 국경을 넘는 결제를 하거나 파이서브 글로벌 고객의 한국 결제를 돕는 식으로 두 회사가 전략적 협업을 이어갈 수 있다.”
-그 외에도 전략적 투자자가 많은데.
“400조원 규모의 시장을 한 회사가 다 할 수는 없다.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은 생태계를 만들어서 같이 키우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한국신용데이터 주주인 KB국민은행과는 사업자 배달 매출에 대한 빠른 정산 서비스를 함께 하고 있다.
캐시노트가 잘하는 것은 배달 매출 등 가게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달금리가 높은 일반 기업이다. KB국민은행은 신용도가 높은 시중은행이다. 서비스 접점에서의 역할은 한국신용데이터가, 자금 흐름은 KB국민은행이 맡는 식이다.”
-한국신용데이터가 투자자 중 한 곳에 매각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회사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장님들에게 더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독립된 회사로 있어야 한다. 매각은 없다. 카카오, LG유플러스(032640), 신한카드, KB국민은행 등 모두 자기자본으로 투자한 주주다. 의결권 기준 지분율이 전체의 절반 이하다.
전략적 투자자는 잠재적 매도 물량(오버행) 우려가 없고, 장기적으로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 한국신용데이터는 내년에 재무적 목표를 달성한 뒤 이 실적을 기반으로 상장을 준비할 예정이다. 2024~2025년 상장이 목표다. 투자자 중에 언제까지 상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곳이 없기 때문에 서두르진 않을 것이다.”
-20대 때 성공적으로 창업하고, 연쇄 창업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2012년 3월 첫 회사였던 오픈서베이가 15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는데 당시 큰 화제가 됐다. 6개월 전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이 시리즈A로 8억원을 받았을 때였기 때문이다. 가장 잘했던 게 뭐냐고 꼽으라면 2011년 1월에 사업을 시작했던 것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폰, 갤럭시폰이 출시되고 스마트폰 1000만대가 보급됐을 때다. 5000만대로 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는 걸 보면서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속 80㎞로 달리는 기차(대세 상승장)에 타서 20㎞로 달렸을 뿐이지만, 남들은 내가 100㎞로 뛰어서 잘 된 것으로 안다. 시장을 본 것과 진짜 실력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두번째 창업 역시 비슷했다. 2016년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업체들이 수십개 나왔다. 규제, 보안, 보호를 얘기하던 금융권에서 갑자기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내걸었다. P2P 산업의 부상은 기존 금융권 회사들이 충족하지 못했던 중금리 시장에 대한 니즈(수요)였다. 중금리 대출을 위해 리스크(위험 요인) 평가를 잘하려면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 많은 사장님들이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유틸리티(캐시노트)를 만들어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올해보다 내년 경제가 어렵다고 전망하는 사람이 많은데, 기업 운영에 대해 조언한다면.
“경기는 사이클이기 때문에 반드시 반등 시점이 온다. 다만 언제부터 반등할 것으로 예상해서 사업을 운영하는가는 개인의 판단 영역이다. 리스크를 계산된 범위 내에서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회사가 갖고 있는 돈을 기반으로 얼마만큼 버틸 수 있는지 액면 그대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객관적으로 10의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는 체력이 있다면 보수적으로 8까지만 감당할지, 12까지 지어 승부를 볼지는 개인의 판단이다. 어려운 시점이지만 한국신용데이터도 아직 풀지 못한 다양한 사장님의 문제를 해결할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다. 마케팅, 세금, 구인 등 여러 문제가 있다. 매년 50만개씩 새로 생기는 가게의 예비 사장님을 위한 창업 준비를 온라인 중고마켓 등으로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