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015760)이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 중인 가운데, 이 여파로 한전의 최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도 기업지원 여력이 40조원 이상 줄어들게 됐다. 대내외 복합위기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이 많아져 산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한전이 산은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영향이 경제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4.85%인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연말까지 권고 비율인 13%를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BIS 비율은 은행 재무구조 건전성의 핵심 지표로 은행의 자기자본액을 위험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거나 분자인 자기자본이 줄면 그 비율도 떨어지게 된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본점 전경./산업은행 제공

산은의 BIS 비율이 떨어지는 주 요인은 한전의 적자다. 산은은 3분기 말 기준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분법에 따라 한전 적자의 33%는 산업은행의 손실로 잡히게 된다. 한전은 올해 3분기에만 7조530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1~3분기 누적으로는 21조8342억원의 적자가 쌓여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올해 31조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값싼 원전을 줄이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많이 쓰면서 탈원전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기요금은 제때 올리지 않아 생긴 결과다.

한전 적자로 산은의 자기자본이 줄면 그만큼 기업대출 등 위험자산을 줄여야 BIS 비율을 유지할 수 있다. 앞서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분법상 한전의 1조원 손실은 산은의 BIS 비율을 약 0.06%포인트(P)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올해 말 한전의 손실액이 21조원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산은의 BIS 비율은 1.37%P 떨어져 (산은의 기업 지원 능력은) 연간 33조원 정도 줄어든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한전의 연간 적자 전망치는 31조원으로 불어났다. 산은은 정확한 BIS 비율 산식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산은 안팎에서는 한전의 적자 확대로 산은의 BIS이 2.02%P 떨어져 연간 기업 지원 능력 감소치가 적게는 40조원 중반, 많게는 50조원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산은의 기업지원 규모는 70조원이다.

BIS 비율이 낮아지면 채권을 발행할 때 높은 금리를 내야 해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미국발 긴축 조치로 금융시장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회사채 시장·단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 + α(알파)'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중 산은과 기업은행이 회사채·CP(기업어음) 매입에 써야 할 금액이 10조원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 지원이 필요한 산업군은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BIS 비율이 낮으면 해외 시장에서 달러를 들여오기 어려워지고, 국내 원화 조달도 힘들 수 있다"며 "정부 보증이 있으니 원화채권 발행은 가능하겠지만, BIS 비율 하락으로 수요가 줄고 금리가 뛰는 것까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BIS 비율 제고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스트레스 테스트 시 산금채와 같은 특은채·특수채 등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포함해 시뮬레이션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 측은 BIS 비율이 낮아진다고 해서 곧바로 기업지원 여력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전 적자로 재무 부담이 발생하긴 하지만,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정책적 역할을 차질없이 수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