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진 한국 원자력발전 산업의 부활을 위해서는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관련 특별법이 조속한 시일 내에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요구가 업계에서 나온다. 현재 원전 부지 내에 설치된 임시 폐기물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라 고준위 방폐장이 마련돼야 한국 원전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과 관련해 2036년 부지 확보, 2043년 중간저장시설 완공 등의 로드맵을 마련했지만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면 일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11일 국회와 원전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고준위 방폐장 관련 법안은 3건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주로 원전 발전용으로 쓴 사용 후 핵연료다. 1978년 국내 1호 원전 가동 이후 40여년 간 고준위 방폐장 설립이 추진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방폐장 유치 지역에 대한 특별지원금 지원과 공공기관 이전, 지역주민 우선 고용 등의 인센티브 방안이 담겼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의 최대 난제인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자 유치 지역 지원안을 마련한 것이다. 부지 확보나 처분시설 운영 시점은 정부의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따르도록 했다. 이 법안은 윤석열 정부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은당 김영식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은 2035년 이내에 관리시설 부지를 확보하고 2043년 중간저장시설, 2050년엔 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구체적인 시점을 제시했다. 정부의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2060년에 고준위 방폐장 운영을 목표로 하는데, 김 의원은 이 시점을 10년 앞당겼다. 두 특별법은 지난 8월 말 발의됐다.

경주 방폐장 지하동굴 모습. 정면에 보이는 시설이 방사선 폐기물이 들어가는 사일로다./조선DB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에는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건설·운영 중인 발전용 원자로의 설계수명 기간에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만 저장하도록 규정한 것이 특징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배치되지 않기 위해 이런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법안은 큰 틀에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독립 기구를 두고 공론화를 거쳐 예비 후보지를 선정한 뒤 주민투표로 최종 부지를 확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방사선 폐기물은 크게 고준위와 저준위로 나뉜다. 사용후 핵연료는 오랜 시간 방사선과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고준위로 분류된다. 소모성 장비나 작업복 같이 핵 물질의 영향을 받아 소량의 방사선을 배출하는 폐기물이 저준위다.

사용후 핵연료는 영구 처분까지 3단계를 거친다. 우선 냉각시설을 갖춘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해 3~5년간 상태가 안정되길 기다린다. 상태가 안정된 사용후 핵연료는 연구처분을 위한 중간저장시설로 이동한다. 영구처분은 곧바로 격리·보관하는 직접 처분과 재처리(재활용) 후 처분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국가가 직접 처분 방식을 선택하지만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은 재처리 후 처분한다.

재처리 기술은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로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토 면적이 좁은 한국의 특성상 직접 처분보다는 재처리가 유리하는 분석도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재처리를 할 수 없다. 국제기구들이 권고하는 방식은 부식과 압력에 초장기간 견딜 수 있는 용기에 넣어 지하 500~1000m 깊이의 안정된 지질층에 처분하는 ‘심지층처분’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부지 내에 있는 임시저장시설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다. 고리·한빛·한울 등 초기에 건설된 원전의 경우 임시저장시설 포화까지 10년도 남지 않았다. 고리·한빛은 2031년, 한울은 2032년 임시저장시설 용량이 끝난다. 특히 고리 2·3·4호기와 한울 1·2·4·6호기, 월성 2·3·4호기는 포화율이 90%를 웃돌고 있다. 이밖에 신월성은 2044년, 새울은 2066년에 각각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된다.

원전의 지속적인 사용을 위해 고준위 방폐장이 반드시 건설돼야 하는 상황이다. 환경부도 지난달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면서 고준위 방폐장 건립을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원전 산업의 부활을 공약했으니 고준위 방폐장 건립의 첫걸음인 특별법 국회 처리에도 힘써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에는 주민 수용성이 최대 난관이다. 정부는 1986년부터 고준위 방폐장 건설 논의를 시작해 총 아홉 차례 부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밀려 모두 실패했다. 2003년에는 당시 전북 부안 위도 주민들이 먼저 부안군의회에 방폐장 유치 신청을 했고,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정부에 방폐장과 양성자가속기 유치 신청을 했다. 하지만 위도 주민을 제외한 다른 부안군민들이 크게 반발했고, 사태가 악화되자 같은해 12월 윤진식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고준위 방폐장 유치 지역에 대한 명확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사회적 지원을 할지, 개인별 지원을 할지 등 사전 논의를 거쳐 규정이 마련되면 이를 바꾸지 않도록 법안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