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저가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세계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자 국내 배터리 3사는 하이망간(망간리치) 제품 개발로 대응하고 나섰다. 하이망간 배터리는 기존 삼원계(NCM) 제품보다 저렴하고 에너지 밀도는 비슷한 수준이어서 LFP 배터리보다 가격과 성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4일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6월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EV, PHEV, HEV)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203.4기가와트시(GWh)로 집계됐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 삼성SDI(006400) 등 국내 3사의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52.4GWh, 25.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4.9%)보다 9.1%포인트(P) 하락한 수치다.
CATL을 비롯한 중국계 기업은 올해 세자릿수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율을 보이며 점유율이 대폭 확대했다. 세계 1위인 중국 CATL의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6.2%P 늘어난 34.8%, 3위인 중국 BYD는 같은 기간 5.0%P 늘어난 11.8%를 각각 기록했다.
중국 업체들은 내수 시장 회복에 따른 전기차 수요 증가로 시장 점유율을 대폭 늘렸다. 최근에는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북미·유럽 시장까지 진출하고 있다.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델3 저가형에 중국산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SK온과 배터리 협업을 이어온 완성차 업체 포드도 최근 CATL과 배터리 공급 협상에 착수했다. 궈쉬안은 지난해 독일 보쉬 공장을 인수하고 폭스바겐그룹과 배터리 셀 공장 건설을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 업체의 파상공세에 한국 기업들은 하이망간 배터리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 3사 모두 하이망간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하이망간 배터리는 양극재 가운데 니켈, 코발트를 빼고 리튬, 망간 함량을 높인 제품이다.
국내 기업의 주력 제품인 삼원계보다는 저렴하고 LFP보다는 비싸다. 대신 NCM과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 밀도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보다 부피가 크고 무게 대비 에너지 밀도가 낮다. 같은 용량의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선 삼원계 대비 더 많은 LFP 배터리를 장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원계 배터리를 쓴 테슬라의 모델3는 1700㎏이지만, LFP를 쓴 모델3는 1825㎏이다. 무게가 많이 나가 같은 배터리 용량이라도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짧다.
국내 업계에서는 하이망간 배터리가 성능은 물론 가격 경쟁에서도 LFP 제품을 앞설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은 LFP보다 10%가량 비쌀 것으로 전망되지만, 같은 용량의 전기차를 생산할 경우 더 적은 수의 하이망간 배터리를 탑재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싸고 수급이 어려운 코발트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때 시장에선 한국 기업도 LFP 배터리를 개발해 중국 업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이 LFP 배터리 개발에 착수했지만, 적극적으로 제품 라인업에 편입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기업과 협업하는 것은 배터리 부족 현상에 대비한 공급망 확대로 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LFP 배터리를 채택하지 않는 추세다. 보급형 전기차 모델에는 LFP가 아닌 하이망간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제품 개발 단계라 상용화 시점은 장담할 수 없다. 기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제품 출시 목표 시점을 2024년으로 잡았다. 다른 기업들은 구체적인 상용화 시점을 밝히지 않고 있다.
망간과 리튬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망간, 리튬을 대부분 중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리튬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50% 수준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인 중국 간펑리튬은 시장 점유율 20%를 목표로 리튬 채굴 업체와 광산을 사들이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망간 역시 9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LG화학(051910)을 찾은 것도 중국의 배터리 소재 시장 장악에 따른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중국 배터리 소재 의존도를 줄이긴 쉽지 않다. 하이망간 전략도 이런 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