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산업용 특수밸브 제조사인 조광ILI, 엔지니어링 기업 에네스지와 손잡고 원전 핵심 부품인 파일럿 구동 안전방출밸브(POSRV) 국산화에 도전한다. POSRV는 기술 장벽이 높은 탓에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부품이다. POSRV의 원천 기술 확보에 성공할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인 소형모듈원전(SMR) 국산 독자 모델의 기술 및 가격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근 한국기계연구원, 조광ILI, 에네스지, 부산대와 함께 POSRV 국산화 및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MOU를 통해 각 기관·기업들은 POSRV의 국산화와 성능 시험 장비를 구축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POSRV는 원전의 핵심 안전 장치로 꼽힌다. 원자로 가압기 상부에 설치돼 냉각 장치의 압력이 설계 압력보다 높아지는 것을 막아준다. 압력이 오르면 밸브를 개방해 압력을 자동으로 낮춰주는데, 비상시에도 수동 조치로 압력을 낮춰 원자로가 안전 정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POSRV의 원천 기술은 현재 독일의 셈펠, 미국의 CCI와 트릴리엄플로우 등 해외 기업 3곳이 독점하고 있다. 국내에는 원천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없어 그동안 전량 수입해 사용해왔다. 대당 가격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원전 1기에는 4개의 밸브가 들어간다. 업계는 POSRV의 원천 기술이 없는 탓에 조금이라도 원전의 설계가 바뀌면 POSRV를 다시 주문해야 했다. 설치 후 유지 보수 과정에서도 해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윤병조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1979년 미국 쓰리마일섬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도 밸브의 고장 때문이었다"며 "그만큼 크기는 작아도 원전 전체의 안전성을 책임지는 부품이 바로 POSRV"라고 설명했다. 현재 원전에 들어가는 200만개 이상의 부품 대부분이 국산화가 돼있지만, POSRV만큼은 국산화가 안 돼 업계의 숙원이었다고 한다.
원전업계는 POSRV의 국산화에 성공할 경우 주요국이 앞다퉈 기술 개발에 뛰어든 SMR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및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2028년까지 총 3992억원을 집중 투자해 국내 독자모델인 혁신형 SMR을 개발‧상용화할 계획이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가 POSRV의 원천 기술을 확보할 경우 다양한 크기의 POSRV를 제작할 수 있어 향후 해외 원전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산 SMR 독자 모델에도 국산 밸브를 탑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