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계속 파업할 수 밖에 없다.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
파업을 중단하고 정부, 화물연대, 화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합리적 대안을 만들길 바란다이준봉 한국화주협의회 사무국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올해 말 일몰 예정인 ‘안전 운임제’ 유지·확대를 요구하며 집단 운송거부(총파업)를 이어가고 있다. 화주들은 안전 운임제에 문제점이 많은 만큼 일몰한 뒤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안전 운임제를 마련해 도입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던 만큼, 화물차주와 화주간 입장차가 커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화물연대 파업의 핵심 배경은 안전 운임제 일몰 조항이다. 안전 운임제는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차주와 시멘트 화물차주가 운행거리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소 운임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화주 또는 운송사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2020년에 도입하면서 3년 일몰 조항이 달려 올해 연말에 종료될 예정이다.
화물연대는 일몰 조항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정부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계속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화주들은 안전 운임제를 시행하면서 운임 책정 과정 등에서 문제가 드러난 만큼 예정대로 일몰하고 새로운 제도를 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철강재 수송 등에 적용하고 있는 ‘안전운송원가’처럼 참고가격을 제시하는 대신 화물 운임계약에 강제성은 두지 않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화물차주와 화주가 안전 운임제를 두고 입장차가 큰 것은 결국 돈 문제다. 도입 이후 안전 운임은 매년 올랐다. 화물차주가 40피트 컨테이너를 싣고 부산 신항에서 서울까지 400㎞ 거리를 왕복하면 현재 안전 위탁운임(운수사업자가 화물차주에게 지급하는 돈)은 85만6700원이다. 2020년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보다 10만원가량 비싸졌다.
여기에 할증료도 붙을 수 있다. 안전 운임에 냉동·냉장 컨테이너는 30%, 심야운송(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은 20% 등의 할증료가 가산된다. 인천·평택 지역 할증, 공휴일 할증, 검색대 통과 할증, 험로·오지 할증 등도 있다. 또 분기마다 3개월 평균 유가가 이전 3개월 평균 유가보다 50원 이상 오르거나 내리면 안전 운임에 반영하게 돼 있다. 최근 유가가 가파르게 뛴 만큼 다음달 1일자로 시행될 안전 운임은 더 상승할 전망이다.
안전 운임 도입 후 화물차주의 수입은 늘고, 화주들의 운송비 부담이 커졌다.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시멘트 화물차주의 순수입은 2019년 201만원에서 2021년 424만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컨테이너 화물차주도 3년 동안 수입이 300만원에서 373만원으로 24.3% 증가했다. 반면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컨테이너 화주인 수출기업들은 평균 30~40%가량 화물 운임이 올랐다. 업종에 따라 최대 70%까지 인상된 사례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합의점을 찾아갈 것을 제안했다. TF에서 논의한 내용을 국회에 전달하고 국회에서 법률 개정에 반영해 오는 11월까지 마무리되면 안전 운임제 일몰 전까지 후속 조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은 “국회가 열린다면 안전운임제를 조속히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10~11월까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완료된다면 (국토부가)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행 안전 운임제를 마련하는 과정도 10년 가까이 걸린 점을 고려할 때 빠르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행 안전 운임제는 화물연대가 2008년 집단 운송 거부에 나선 뒤, 정부 중재안이 무산되는 과정을 거쳐 2016년에야 국회 입법안이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강제성이 있는 ‘표준운임제’와 강제성이 없는 ‘참고운임원가제’를 두고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2018년에 절충안으로 제한된 운송품목의 운임에만 강제성을 부여하고, 3년 일몰 조항을 달고서야 안전 운임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화물차주는 강제성이 있는 현행 안전 운임제를, 화주는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제도를 만들고 싶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논의의 장을 만드는 수준으로 접근하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