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플랫폼 ‘플로(FLO)’를 창작자와 팬이 함께 성장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L2E(Like to Earn) 생태계로 확 바꾸겠습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글로벌 지식재산권(IP), 얼라이언스(연합), 블록체인. 드림어스컴퍼니(이하 드림어스) 새 리더에 오른 지 열흘이 안 된 4월 8일 이뤄진 김동훈 대표이사와 인터뷰는 기자의 예상 범위를 벗어났다. 서비스 품질 향상 등의 관점 정도로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드론을 띄워 고도에서 지형을 촬영하듯, 콘텐츠 생태계로 시야를 확장해야 딴 동네에서 온 용어들이 비로소 엮였다.
드림어스는 SK텔레콤이 2014년 음향 기기 업체 아이리버를 인수해 재편한 회사다. 현재는 2018년 출시된 오디오 서비스 플로가 이끄는 음악 부문 매출이 전체 매출의 대부분(81.68%)을 차지한다. 드림어스는 출범 3년, 아이리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1분기 만인 지난해 흑자 전환도 이뤄냈다(연결 기준 매출액 2442억원, 영업이익 48억원). 플로가 개인 맞춤형 화면을 내세워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멜론이 독주해온 국내 음원 서비스 시장에 크고 작은 균열을 일으킨 덕분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더 이상 플로는 음원 서비스 업체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음악과 오디오를 넘어,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가 창작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플로를 진화시키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지난해 11월 SK텔레콤에서 인적 분할된 ICT(정보통신기술) 투자 전문 회사이자 드림어스 최대 주주인 SK스퀘어가 올 3분기 자체 토큰(암호화폐) 발행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전자상거래, 콘텐츠 등 그룹 내 여러 서비스를 전방위로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반 가상 경제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 드림어스의 ‘빅 픽처(big picture)’는 SK그룹 차원의 빅 픽처와도 맞닿아 있는 셈. 다음은 김 대표와 일문일답.
1998년 SK텔레콤에 입사, 24년 만에 계열사 대표가 됐다.
“여러모로 감회가 깊다. SK텔레콤 과장 시절에 음악 서비스 ‘멜론’ 개발에 참여했다. 멜론이 팔려나가 아쉬움도 있었는데, 플로라는 또 다른 자식을 낳아 키우는 느낌이다(멜론을 서비스했던 로엔엔터테인먼트는 SK텔레콤의 계열사였으나 사모펀드를 거쳐 2016년 카카오에 인수됐다).”
3월 30일 대표 취임 일성이 ‘L2E’였다.
“팬이 아티스트를 좋아하거나 아티스트가 팬의 활동을 좋아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좋아요 생태계’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이다. 지난 3월에 댓글 시스템을 적용했고 7월부터 유튜브처럼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어 플로에 올릴 수 있도록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창작자가 팬 커뮤니티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창작자 토큰도 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 중이다. 유료 구독 모델은 유지할 계획이다.”
새 그림을 그리는 배경이 있나.
“방탄소년단(BTS)이 보여준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자. 팬들은 BTS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BTS의 음악을 소비한다. BTS 역시 끊임없이 팬과 소통한다. 음악 소비의 패러다임이 음원 중심에서 아티스트, 좀 더 포괄적으로는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가고 있다. 크리에이터가 팬덤을 형성하게 되면 굿즈 등 다양한 파생 상품까지 팔 수 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정보를 올리고 팔로어와 소통하고 제품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과 유사한 형태다.”
플로에 블록체인까지 연계될 줄은 예상 못 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블록체인 기반의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와도 급속히 결합 중이다. 팬들의 ‘덕질 활동’에 토큰으로 보상하거나 팬들끼리 디지털 굿즈를 사고팔 수도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 콘텐츠 생태계의 구조와 규칙을 새로 설계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후발 음원 서비스 업체로서 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얼라이언스 전략을 펼치는 이유다. 음악 IP 투자 전문회사 비욘드뮤직의 지분을 사고 피네이션, 알비더블유(RBW), 메이크어스 같은 유수 제작사에 대한 투자도 단행했다. 위버스(하이브의 팬덤 플랫폼) 출신들이 설립한 팬덤 비즈니스 전문 스타트업 비마이프렌즈, 빗썸코리아가 세운 NFT·메타버스 법인인 빗썸메타에도 투자했다. 얼라이언스 내 기업들이 창작자 토큰을 주고받는 것도 연구 중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SK스퀘어가 SK코인(가칭)을 발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드림어스 전략도 SK스퀘어의 전략에 따른 것인가.
“SK스퀘어와 궤를 같이한다. 드림어스는 지난해 5월 시장 1위 오디오 플랫폼 도약을 목표로 3년간 2000억원을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비전을 제시하며 신한벤처투자가 설립한 밴처캐피털 네오스페스로부터 7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SK스퀘어가 발행할 SK코인을 플로의 공식 토큰으로 채택하는 등 SK스퀘어와 적극적인 시너지를 모색할 것이다.”
올해도 흑자가 가능한가.
“흑자 기조를 유지한다고 못 박기보단, 3년 후 도약을 위해 최대한 투자를 단행한다는 기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출은 계속 확장세를 이어 나가겠다. 현금은 있기 때문에 당분간 투자 유치 계획은 없다.”
드림어스는 사명부터 사무실 분위기, 자금 유치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처럼 움직인다.
“드림어스가 실행 중심의 수평적 문화를 지닌 건 맞다. 서비스 개편 때마다 내부에 격론이 있었고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움직였다. 스타트업 문화가 없었으면 변신과 도전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업계에 미친 영향이다. 플로가 등장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음원 서비스 업체들은 톱 100 차트(인기 순위 100곡)와 신곡 위주의 서비스 디자인을 바꾼 적이 없다. 플로 앱을 보면 사용자마다 서비스 화면이 다르다. 이제 다른 업체들도 따라오고 있다.”
plus point
드림어스가 투자한 회사들
김동훈 대표로부터 플로의 방향에 대해 듣고 나니, 그동안 드림어스가 투자한 회사들이 새롭게 보였다. 드림어스가 크리에이터 생태계 구성이라는 목표로 하나둘씩 놓아둔 포석이기 때문이다.
드림어스는 비욘드뮤직과 전략적 투자 파트너십을 맺고 음원 IP 투자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비욘드뮤직은 음원 저작, 인접권의 투자·인수·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현재 2700억원 규모의 음원 IP를 보유하고 있다. 드림어스가 주주로 참여한 빗썸메타는 메타버스·NFT 사업을 펼친다. 미국 모바일 게임 개발 플랫폼 업체인 유니티와 제휴하기도 했다. 빗썸메타에는 LG CNS, CJ올리브네트웍스 등도 주주로 참여한다. 비마이프렌즈는 창립 1년 만에 누적 투자 100억원을 유치한 팬덤 비즈니스 전문 스타트업이다. 하이브(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위버스컴퍼니 출신들이 만들었다. 크리에이터와 팬 간 소통, 디지털 콘텐츠 판매, 전자상거래 등 크리에이터 경제에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