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업 결합을 승인하는 대신 두 항공사의 운수권(다른 나라에 항공기를 보내 여객·화물을 탑재·하역할 수 있는 권리)을 재배분하고 슬롯(항공기가 공항에서 해당 시간대 운항을 허가받은 권리)을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을 내리기로 하면서, 통합 항공사의 사업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비슷한 업무를 하는 중복 인력이 많아 향후 몇년간 신규 채용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운수권과 슬롯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돼 경쟁력이 높아지게 됐다.

공정위는 29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건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가 합병하면 일부 노선의 여객 점유율이 50%가 넘어 시장 경쟁을 제한할 것으로 봤다. 이에 통합 항공사가 보유한 국내 공항의 슬롯 일부를 반납하고, 항공비자유화 노선에 한해 다른 국내 항공사에 운수권을 재분배하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전원회의는 내년 초 열릴 예정인데, 위원 간 심의 결과에 따라 조치는 일부 바뀔 수 있다.

지난 2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가 서 있다. /연합뉴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조치로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이 약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슬롯과 운수권이 제한되면 항공사는 특정 시간대에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횟수와 특정 노선에 투입하는 항공 편수를 모두 줄여야 한다.

공정위의 제한 조치로 통합 항공사는 인력과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운수권이나 슬롯이 줄면 사업 축소는 불가피하다. 현재 대한항공 임직원 수는 1만8000명, 아시아나항공은 8700명이다. 두 회사의 통합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간접 인력은 1000명이 넘는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가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면 사업 경쟁력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김포공항 주기장에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 소속 여객기들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공정위의 결정으로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사업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통합 항공사가 반납한 운수권은 원칙적으로 국내 다른 항공사에 배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089590), 티웨이항공(091810), 플라이강원뿐 아니라 신생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 등이 수혜를 볼 수 있다. 특히 ‘알짜노선’으로 꼽히는 김포공항발(發) 국제선에 LCC가 대거 취항할 가능성이 있다.

운수권 재분배 과정에서 항공 운임이 저렴해질 가능성도 있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교수는 “몽골 노선처럼 그동안 일부 항공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노선에 다른 항공사가 취항하면 경쟁 구도가 생겨 자연스레 운임이 낮아질 것”이라며 “운임 하락 효과로 소비자 편익도 증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몽골 노선은 대한항공이 단독 취항했으나 아시아나항공이 이 노선에 뛰어들면서 운임이 10~20%가량 떨어졌다.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내려도 미국·유럽 연합(EU)·중국·일본·영국·싱가포르·호주 등 7개국 경쟁 당국의 심사가 남아있다. 공정위는 경쟁 당국 간 조치가 서로 달라 기업이 곤란을 겪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경쟁 당국과 지속해서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송달 받으면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