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기업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의 비행기 퍼스트클래스(일등석) 항공권을 확보하지 못해 진땀을 빼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편이 줄면서 CES를 찾는 정·재계 인사 수보다 퍼스트클래스 좌석이 턱없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직항 퍼스트클래스 좌석 예약에 실패한 기업은 경유해서라도 CEO를 퍼스트클래스에 태우는가 하면, 아예 다른 기업보다 일찍 출발하는 방법까지 고려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003490)은 내년 CES를 위해 라스베이거스행 직항편을 1월 3일에 한 편, 4일에 두 편씩 특별 편성했다. CES가 5일에 개막하는 만큼 3~4일 라스베이거스행 수요가 대거 몰린 데 따른 것이다. 평소 라스베이거스행 직항 노선이 없는 아시아나항공(020560)도 1월 3일에 한 편을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이 라스베이거스행 특별기를 편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여행사 등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에도 라스베이거스행 직항편을 지속 요청한 결과”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여객기. /대한항공 제공

오미크론 여파로 CES 참석 인원이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기업인이 출장길에 오른다. 삼성전자(005930)에선 최근 신임 대표이사에 오른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현재 미국 출장 중인 정의선 현대차(005380) 회장도 시무식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CES 출장에 나설 예정이다.

SK그룹의 경우 역대 최다인 6곳의 계열사가 내년 CES에 참석한다. 최태원 회장은 아직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지만 부회장단은 대부분 CES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에선 LG전자(066570)LG디스플레이(034220) 등이 참석한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선 정기선 사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모두 현장을 찾고, 두산(000150)그룹도 7개 계열사가 참석을 확정했다.

경영자급인 ‘C레벨’ 임원들은 보통 해외 출장을 갈 때 퍼스트클래스를 이용하는데, 대한항공 라스베이거스 특별기의 경우 퍼스트클래스 좌석이 편당 8개에 불과하다. 아시아나항공은 퍼스트클래스 없이 모두 비즈니스·이코노미클래스로 구성돼 있다. 3~4일에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직항편의 퍼스트클래스는 대한항공 3편의 총 24석뿐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수차례 회의 끝에 퍼스트클래스를 정부와 각 기업에 조금씩 할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요 기업이라 해도 2~3자리 정도만 겨우 확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직항편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대폭 줄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코로나19 이전까지는 라스베이거스 직항편을 매일 한 편가량 배정했으나, 지금은 이를 중단했다. 비행기가 매일 출발한다면 3~4일이 아닌 다른 날로 출발 일정을 조정하면 되는데, 그마저 되지 않으니 수요가 더욱 몰리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경유가 가능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LA)행은 일주일에 다섯번 이상 뜨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줄어든 수준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퍼스트클래스 좌석이 워낙 한정적이다보니 매년 CES 시즌이 되면 수요가 몰리긴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더욱 예약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각 기업들은 경영진의 비행기 티켓을 두고 막판까지 고심하고 있다. 한 기업의 경우 일부 경영진만 라스베이거스행 직항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다른 경영진은 샌프란시스코 또는 LA를 경유하는 방법으로 퍼스트클래스를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기업은 일정을 하루 이틀 앞당겨 출발하는 식으로 퍼스트클래스 항공권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로스앤젤레스 직항편은 3~4일에만 있는 만큼 일정을 조정한다 해도 경유는 피할 수 없다.

한 기업 관계자는 “우리 그룹은 전 경영진이 비즈니스클래스를 타기로 했다”며 “평소 출장은 검소하게 다니자는 분위기이지만, 이번엔 특히나 퍼스트클래스 예약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클래스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3~4일 이틀간 총 168석이 있어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일부 기업은 취소표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방역에 민감한 정부 쪽에서 취소표가 종종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박기영 2차관 등이 CES 참석을 검토했다가 불참하기로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매일 취소표를 문의한 끝에 겨우 직항 퍼스트클래스 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기승을 부리면 기업들이 출장 규모를 대폭 줄여 항공권이 남을 수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CES를 찾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오미크론으로 인해 참석을 고심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미크론 확산세가 여전히 거세 출장 직전까지도 규모를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