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해외 주요국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ESS로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르고 있는 덕분이다. 한국도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정작 필수적인 ESS 시장은 역성장하고 있다.
15일 코트라 중국 우한무역관의 ‘중국 청정에너지의 주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급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ESS 신규 증설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00% 증가한 10기가와트(GW)를 기록했다. 코트라는 동우(东吴)증권을 인용해 “중국의 ESS 장치는 2025년 34.4GW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올해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84%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SS는 음식을 저장하는 냉장고처럼 남는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를 보급할 때 필수적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경우 밤낮과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한데, 이 단점을 ESS가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ESS 시장도 올해 6.5기가와트시(GWh) 규모에서 2025년 현재의 약 9배 수준인 55.3GWh로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는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이 연간 44.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 올해 200억달러(약 22조원)에서 5년 뒤인 2026년에는 106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각국은 정부 차원에서 ESS 시장 육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신형 ESS 발전 가속화 지도 의견’을 발표한 중국이 대표적이다. 2025년까지 국내 ESS 규모를 30GW 이상 끌어올리고, 2030년 신형 ESS의 전면 상용화 실현 계획을 담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도 운영보조금을 지급하며 신재생에너지 저장 시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설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 ESS 시장은 성장이 정체돼 있다. 정부는 2017년 ESS에 대해 전기요금 할인특례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5배를 적용해줬다. 이에 따라 2018년 상반기까지 국내 ESS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0배 성장한 1.8GWh가 보급됐다. 이는 이전 6년간의 총 보급량(1.1GWh)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REC는 대형 발전업체가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도 태양광 발전사 등으로부터 사들이면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종의 발전 인증서로, 가중치가 높을수록 사업자가 가져가는 돈도 많아진다.
그러나 201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ESS 화재가 점점 늘어나면서 업계는 위기를 맞이했다. 안전성 논란이 불거져 ESS 제조·운영이 위축된 것이다. ESS를 0~100%까지 활용하면 배터리를 20~80% 구간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전지 수명이 훨씬 금방 닳고 화재 위험도 높아진다. 그러나 REC를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하는 국내 ESS 사업자들은 완전충전과 완전방전을 반복했다. ESS가 방전돼야 REC를 받을 수 있고, REC를 많이 받으려면 발전량이 많아야 하니 완전충전, 완전방전을 반복한 것이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ESS 사업자들은 완전충전과 완전방전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 화재 이슈가 드물다”고 말했다.
여기에 ESS에 적용되는 REC 가중치가 단계적으로 줄어 올해부터는 ‘0′으로 완전히 사라져 수익성이 악화됐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ESS 시장 규모는 2019년 3.7기가와트시(GWh)로, 2018년(5.6GWh)보다 33.9% 감소했다. 2019년 출범한 ESS 관련 협회 관계자는 “활동을 멈춘지 오래됐다”며 “지난해까지도 토론회 등을 개최해 인센티브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국내 ESS 시장이 사라지다보니 협의회 활동도 자연스레 멈췄다”고 말했다.
중국비전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리튬이온배터리 등 전기화학 ESS의 세계 증설량은 중국과 미국이 각각 34%, 31%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이 23%로 3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4%에 불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 6월 ‘ESS 안전관리 강화대책’을 수립한 데 이어 지난해 2월 화재조사 결과를 토대로 ‘ESS 추가 안전대책’을 내놨고, 내년 초 3차 대책을 준비중이다. 정부는 화재를 막기 위해 ESS의 충전율을 제한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비용을 들여야 하는 문제”라며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상황이 열악한만큼 ESS 산업의 질적 제고를 위해선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