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시장 발달과 코로나19 영향으로 택배 물동량이 늘자 국내 택배사들이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물류시설 자동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반복적인 작업과 체력이 많이 드는 업무를 기계가 도맡으면서 업무 효율을 올리는 것이다. 다만 기술 개발 속도나 관련 법 제정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택배 배송까지 자동화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1위 기업인 CJ대한통운(000120)은 지난해 4월부터 기존 물류연구소의 이름을 ‘TES물류기술연구소’로 바꾸고 첨단 설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대표적인 물류 설비로는 자동운송로봇(AGV·Automated Guided Vehicle)과 자율주행이송로봇(AMR·Autonomous Mobile Robot), 피스 피킹(Piece Picking) 시스템 등이 있다.
AGV와 AMR은 선별 작업 등이 필요한 제품을 자동으로 작업자에게 전달해주는 로봇이다. 피스 피킹 시스템은 로봇팔이 탑재된 AI 기반 설비로, 낱개 상품을 구별한 뒤 하나하나 상자나 컨테이너에 넣는 기능을 한다. AGV와 AMR이 물류센터를 돌아다니며 재고를 운반하던 작업자의 다리 역할을 대신한다면 피스 피킹 시스템은 작업자의 오른팔이 되는 셈이다. CJ대한통운은 연말까지 곤지암과 군포 등 주요 물류센터에 이들 설비를 도입할 예정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는 국내 최초로 물류센터에 첨단 기술 도입을 마쳤다. 롯데택배는 지난 4월부터 덕평 풀필먼트(Fulfillment·통합 물류관리) 센터에 AGV를 도입했다. AGV는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피커(Picker·집품을 하는 사람) 앞으로 운반한다. 기존에는 피커가 소비자를 대신해 물류센터에서 장을 보듯 배송할 상품을 골라 담았다. 롯데택배는 택배 포장도 자동화 라인을 구축해 효율을 높였다.
롯데택배는 이달부터 중부권 메가허브 운영을 시작한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하루에 150만 상자를 처리할 수 있는 이 물류센터에는 AI 인식 분류 시스템과 5면 바코드 스캐너, 물량 분산 최적화 시스템 등이 적용될 예정이다.
㈜한진(002320)도 2023년 완공을 목표로 대전에 건설 중인 메가 허브 물류센터에 2850억원을 들여 택배 물량 처리를 완전 자동화할 예정이다. AI와 3D 자동 스캐너, 택배 자동 분류기 등 첨단 설비가 택배를 모양과 크기, 포장 형태에 따라 분류하고, 화물차가 각 지역으로 실어갈 수 있도록 정렬한다. 하루 처리 물량은 120만 상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택배사들이 물류시설 자동화에 뛰어드는 이유는 물동량 증가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은 최근 10년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동량은 매년 전년 대비 7%~13%가량 늘다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증가율이 21%까지 치솟았다. 올해도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1~9월 월별 물동량이 전부 지난해 기록을 웃돌았고 같은 기간 누적 물동량은 26억6537만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24억4909만개)보다 9%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물류시설들은 노후화된 상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7000여개 물류시설 중 36%는 2000년 이전에 세워져 20년 넘게 쓰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물류시설법 시행령을 개정해 스마트 물류센터 건립을 위한 행정적 지원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에 물류시설 자동화 관련 사업은 점차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류 전문 시장조사업체 로지스틱스IQ는 물류시설 자동화 시장이 올해부터 매년 14%씩 성장해 2026년에는 300억달러(35조22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택배 배송까지 자동화 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외의 경우 페덱스가 최근 소형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택배 배송을 시작했다. 일본도 무인 배송 로봇의 일반도로 운행을 허용하도록 내년부터 법을 바꿀 예정이다. 국내에선 아직 우아한형제들과 로보티즈 등만 배송 로봇을 이용해 실내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로봇과 드론의 실외 배송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올해 제정·시행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은 화물자동차와 이륜자동차만 배송서비스 운송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도 배송 로봇 등에 대한 분류 기준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는 적극적으로 배송 로봇 상용화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초기 테스트 단계에 머물러있다”며 “제도 정비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