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촌동에 있는 950만㎡(약 287만평) 규모의 포스코(POSCO) 포항제철소에서는 지난해 조강(쇳물) 1623만톤을 생산했다. 이는 약 1623만대의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통상 승용차 1대에는 쇳물 1톤이 들어간다. 작년에 포항제철소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는 약 3300만톤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이 이산화탄소(CO₂)다. 온실가스 3300만톤은 30년생 소나무 약 50억 그루가 1년동안 흡수하는 양이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2019년 평균(7880만톤)보다 10%가량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저감 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연간 조강 생산량을 100만톤 이상 줄여야 달성할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포스코뿐만 아니라 국내 75만개 기업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2018년 기준 1억120만톤), 정유·석유화학(6280만톤), 시멘트(3580만톤) 등의 부담이 크다.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대다수 기업이 동의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수소환원제철과 CCUS(이산화탄소 포집, 활용, 저장)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 없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생산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정부가 기후 위기를 막겠다는 대의(大義)를 내세우고 있지만 산업계에선 탄소중립이 ‘과속’하면 산업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포스코 제공

5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달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해 11월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2030년 NDC는 2018년(온실가스 배출량 7억2760만톤)보다 40% 이상 감축해야 할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기존에는 2030년까지 2018년대비 온실가스를 26.3% 줄이기로 했는데, 목표치가 대폭 올라가는 것이다.

정부가 2030년 NDC를 높여 잡는 이유는 ‘2050 탄소중립’과 맞물려 있다. 정부가 3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100% 줄이려면 단순 계산할 때 매년 3.3%씩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 탄소중립기본법에서 2030년까지 2018년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35% 이상’ 감축한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다.

NDC가 높아지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은 커진다. 산업계는 기존 2030년 NDC에 맞춰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8.9%~12.9%가량 줄이는 방안으로 계획을 짜고 있다. 산업계는 에너지효율이 이미 상당 부분 고도화돼 있어 현재 기술로 추가 감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조강 1톤을 생산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를 2009년 2.2톤에서 2020년 2톤까지 10%가량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제로는 2.11톤으로 4% 감축에 그쳤다.

또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은 원료로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어 이를 대체하는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온실가스를 줄이기도 쉽지 않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산업계의 에너지효율은 이미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현재 기술만으로 온실가스를 더 감축하기가 쉽지 않다”며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들은 2030년까지 상용화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2030년 못 박았지만... 철강업계, 필수 기술 상용화 시점 불투명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을 대표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술로 꼽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철강업계는 2018년 기준으로 온실가스 1억1200만톤을 배출해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9%를 차지했다. 철강업계의 온실가스 가운데 약 79%가 열원과 환원제로 쓰이는 석탄에서 발생했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낼 때 사용하는 환원제를 석탄이나 천연가스에서 수소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이론상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조차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시점을 2050년으로 잡고 있다.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대규모 설비 투자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고로(용광로)를 전기로로 교체해야 하고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도 뒷받침돼야 한다. 포스코는 이 작업에 최소 4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간 단계로 철스크랩(고철) 활용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 있다. ‘저(低) HMR(Hot Metal Ratio) 조업’ 기술인데, 이 기술도 현재 개발 단계에 있다. 포스코는 지난 2분기부터 용선(쇳물)에 철스크랩 배합 비율을 15%에서 20%로 올렸고 2025년까지 이 비율을 30%로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 목표가 실현되면 2030년 NDC에는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철스크랩 배합이 늘어나면 철강재 가공에 필요한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어려운 점 등 극복해야 할 난관이 남아있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저 HMR 조업도 당초 2040년 상용화를 목표로 했던 기술인데 온실가스 감축률이 높아지면서 2030년까지 도입하는 것으로 당겨진 것”이라며 ”실제 상용화까지는 극복해야 할 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현대제철 제공

◇ 시멘트·석유화학, 온실가스 감축 기술 상용화 시점 불투명

석유화학업계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발생한 납사(Naphtha)를 열분해할 때 나오는 부생가스를 에너지로 활용하는데, 이때 주로 온실가스가 주로 배출된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 화석연료를 수소 등으로 대체하는 것이 주요 온실가스 감축 전략이다.

시멘트산업은 원료인 석회석(탄산칼슘)을 가열해 클링커(산화칼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양이 전체 배출량의 60% 이상이다. 현재 석회석을 완전히 대체할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멘트업계는 열에너지를 석탄 대신 수소 등에서 얻고, 클링커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혼합재 비율을 높이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술 모두 실제 상용화 시점은 불투명하다. 2030년까지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감산하는 수밖에 없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바로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다. 설비를 갖추고 이를 뒷받침할 공급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며 “업계 현실과 동떨어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제시되면 생산량을 줄여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멘트업계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결국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탄소배출권(KAU21) 가격은 현재 톤당 3만500원 수준으로 시멘트 가격(톤당 7만8000원)의 39% 수준이다. 원재료비나 전력비 등을 고려하면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시멘트를 더 생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탄소감축 목표에 맞춰 시멘트업계도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탄소감축 목표에 맞춰 생산량이 고정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철강·석유화학 감산하면 산업 경쟁력 타격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약 40%를 줄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철강과 석유화학, 반도체 등은 2030년대까지 설비 투자를 더 늘릴 가능성이 커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2018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에 더해 앞으로 늘어날 온실가스까지 추가로 감축해야 해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해 철강과 석유화학 등이 실제 감산에 들어가면 수요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사들이 감산을 하면 자동차, 조선 등 전방 산업도 수급 부담이 커진다”며 “당장 지난 2분기에 철강재 수급난이 생겼을 때 정부의 해법이 철강사들의 증산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기술 수준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량을 현실적으로 설계해야지 정부가 목표를 정해놓고 따르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실가스를 무리하게 줄이면 산업 경쟁력에도 부담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조업 경쟁국인 중국은 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면서도 2030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국내 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감산하는 동안 중국은 지금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탄소 감축 목표가 낮은 외국으로 설비투자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조강 생산능력을 현재 3500만톤에서 6000만톤으로 늘릴 계획인데, 인도네시아와 인도, 북미 등의 투자만 고려하고 있다.

재계와 학계 등에선 2030년 NDC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는 “현재 기술로 8년 뒤 2030년 NDC를 달성하는 것은 무리”라며 “온실가스 감축에만 방점을 찍을게 아니라 국내 산업 생태계를 세밀하게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