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자동차 관련 연구·개발(R&D) 투자액이 지난해 1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16% 늘어난 것으로,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미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데다 선진국보다 R&D 집약도가 낮아 여전히 공격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관세와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투자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24일 현대차그룹 상장사 중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업을 하는 현대차(005380)·기아(000270)·현대모비스(012330)·현대위아(011210)·현대오토에버(307950)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5개사는 지난해 R&D에 총 11조2987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전(9조7419억원)보다는 16.0%, 2년 전(8조2600억원)보다는 36.8% 늘어나는 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각 사 매출액에서 R&D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의 평균치 역시 2023년 2.1%, 2024년 2.3%, 지난해 2.5%로 확대 추세다.

그래픽=정서희

이익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R&D 비용은 늘어났다. 지난해 5개사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 합산치는 24조3632억원으로, 1년 전 30조4234억원보다 19.9% 급감했다. 현대모비스(9.2% 증가)와 현대오토에버(13.8% 증가)를 제외한 3개사는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19.5%, 28.3%씩 감소했고, 현대위아도 6.6% 줄었다. 그만큼 돈 쓸 여력이 없어졌는데도 오히려 미래에 대한 투자는 늘린 것이다.

사별로 R&D 비용 내역을 살펴보면, 현대차가 1년 전 4조4894억원에서 5조5354억원으로 20.6% 늘렸다. 기아도 3조2473억원에서 3조7129억원으로 14.3% 확대했다. 증가율로는 현대오토에버(800억원)가 17.11%로 가장 높았다. 이 외엔 현대위아(936억원)와 현대모비스(1조8774억원)가 각각 7.61%, 7.28%씩 R&D 비용을 확대 집행했다.

이러한 R&D 비용 투자는 다양한 기술적 진보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만 보면, 총 29건의 R&D 실적을 공개했다. 용도에 따라 차체의 길이나 높이가 제각각인 목적기반차량(PBV)의 옆면을 큰 금형 하나로 찍어내지 않고 레고처럼 조립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금형 제작에 드는 비용 절감은 물론, 디자인 변경도 수월해진다.

이 외에도 차량 전·후방 움직임 물체를 감지할 때만 녹화하는 '저전력 모드' 최초 양산 기술, 차량 출발 시 진행 방향에 장애물이 있을 때 페달 오조작을 감지하고 가속 제한·긴급 제동하는 기술 등도 기아와 함께 확보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현대오토에버는 자동차 관련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 개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미래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위해 공격적 R&D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 4년간 260억달러(약 38조9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및 양산 로드맵이 포함돼 있다. 국내에선 올해부터 5년간 125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이 중 신사업 투자와 R&D에 각각 50조5000억원, 38조5000억원을 배정했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하지만, 관세와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 자동차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비용이 3~4%대인 만큼, 현대차그룹의 R&D 집약도는 다소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현대차그룹의 투자는 지속되겠지만, 올해 수익성 악화에 따라 (투자) 동력도 약화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