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세라티가 한국 시장에서 판매한 차량은 단 304대. 점유율이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도로 위 희소성을 높여 오히려 마세라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마세라티의 주력 모델,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그레칼레'를 만나봤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이윤정 기자

그레칼레는 엔진 종류에 따라 ▲GT(300마력·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데나(330마력·마일드 하이브리드) ▲트로페오(530마력·가솔린 V6) ▲폴고레(순수 전기) 트림으로 나뉜다. 시승 차량은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트로페오였다.

그레칼레의 몸집은 길이 4859㎜, 너비 1979㎜, 높이 1659㎜다. 동급 모델인 포르셰 '마칸 터보'와 비교해 보면, 길이와 너비가 각각 75㎜, 41㎜씩 길고 넓다. 트로페오에는 마세라티 특유의 세로형 창살이 적용된 전면부 그릴이 다른 트림보다 더 돌출돼 배치됐다. 대담함과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하단 범퍼에는 검은색 탄소 섬유 무늬의 프런트 스플리터가 장착돼 있다. 프런트 스플리터는 주행 중 정면에서 오는 공기를 위아래로 나누고, 고속 주행 시 차가 도로에 달라붙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엔진 열을 식히는 범퍼 양옆의 공기 흡입구가 크고 입체적으로 설계된 점도 이 차가 고성능 모델임을 강조한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 측면./이윤정 기자

측면 앞부분엔 '트로페오' 레터링이, 뒷부분엔 삼지창 로고가 더해져 마세라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알로이 휠 역시 삼지창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후면 테일라이트는 길고 얇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민첩한 이미지다. 문 손잡이는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방식이다. 안에서 문을 열 때도 버튼을 눌러 열어야 한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 1열 모습./이윤정 기자

스티어링 휠 위에 있는 버튼을 눌러 시동을 켜면, 기분 좋은 야수가 내는 듯한 '그르렁' 소리와 함께 엔진이 켜진다. 마세라티는 작곡가와 피아니스트까지 동원해 엔진음을 만들 만큼, 엔진음을 소음이 아닌 예술로 여긴다.

실제 고속 주행 중 스티어링 휠 뒤에 있는 패들 시프트로 변속기 기어 단수를 낮추니, 엔진의 회전 속도인 RPM이 치솟으며 터져 나오는 강렬한 배기음이 운전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만큼 힘도 강력하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마세라티 스포츠카인 'MC20'의 네튜노 엔진을 기반으로 한다. 6기통 3000cc 트윈 터보 엔진으로, 최대 530마력에 RPM이 6500까지 치솟는다. 순간 가속력을 보여주는 최대 토크는 620Nm다.

그레칼레와 함께 자주 구매 선택지에 오르는 BMW 'X5 M60i xDrive'의 경우 최대 530마력을 내지만, 엔진 배기량(4395cc)이 크다. 최대 토크(750Nm)로 더 크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휠./이윤정 기자

고속 주행을 해보면 순식간에 속도가 치솟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한국 공도 위에선 그레칼레 트로페오를 극한 성능까지 밀어붙이기 어려울 만큼 힘이 넘쳐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끌어올리는 데 3.8초밖에 걸리지 않고, 최고 속도도 시속 285㎞에 달한다.

트로페오에만 장착돼 있는 코르사 모드로 바꾸면 순식간에 서스펜션이 단단해지면서 반응성이 최고조로 치솟는다. 21인치의 두꺼운 타이어가 지면을 꽉 잡아줘 고속 주행이 안정적이고, 바깥바람 소리도 많이 들리지 않는 편이다.

그레칼레의 목적은 탁월한 성능을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스포츠 모드로 달리다 기본 설정인 GT 모드나 컴포트 모드로 바꾸면 흥분했던 야수가 차분해지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울퉁불퉁한 노면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통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스펜션이 부드러워진다. 급격한 코너를 돌 때에도 핸들을 크게 돌리지 않고 간결하게 통과가 가능했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 내부./이윤정 기자

내부는 고급스러움과 기능성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질 좋은 가죽이 대시보드 전반을 감싸고 있다. 계기판부터 12.3인치 중앙 패널, 공조 기능 등을 조절할 수 있는 8.8인치 컴포트 패널, 대시보드 한가운데 있는 디지털 시계까지 총 4개 스크린이 장착돼 있다. 중앙 패널과 컴포트 패널 사이 기어를 바꾸는 물리 버튼이 있다.

다만 럭셔리카의 상징인 대시보드 시계가 디지털이라는 점, 긴급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 비상등이 터치식이라는 점 등은 아쉬운 부분이다. 중앙 패널과 컴포트 패널의 조작 방식이 다소 복잡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고, 차량과 연결된 휴대전화 블루투스가 갑자기 끊기는 현상도 종종 발생했다. 천장 부분은 섬유 소재로 마감돼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느낌이 덜했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중앙·컴포트 패널./이윤정 기자

2열 공간은 넉넉한 편이다. 내부 공간감을 엿볼 수 있는 휠베이스(앞바퀴 중심축과 뒷바퀴 중심축 간 거리)는 2901㎜로, 동급인 포르셰 마칸 터보(2893㎜)보다 길다. 자체 내비게이션에 '티맵'이 장착돼 있고, 지도가 헤드업디스플레이에 그대로 표시돼 편리했다. 이탈리아 사운드 전문 업체 '소너스 파베르'의 스피커 21개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 몰입감 있는 사운드 경험을 제공한다.

트렁크 용량은 570L인데, 골프 캐디백을 똑바로 넣기는 어렵고 대각선으로 넣어야 한다. 골프 캐디백 두 개와 보스턴백 두 개를 넣으려면 뒷좌석 일부를 접어 공간을 키워야 했다.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가격은 세금을 포함해 1억6980만원이다.

마세라티 중형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트렁크./이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