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로 자동차 수요가 줄면서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는 현대자동차의 전략이 위기를 맞았다. 현대차의 올해 내수 판매는 11월 누적기준 전년대비 6.2% 줄어 지난해(-7.1%)에 이어 2년 연속 감소가 유력하다. 대기 물량이 100만대 이상이긴 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보니 현대차는 내년 실적 목표도 아직 잡지 못했다.
2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통계에 따르면 올해 11월 누적 기준 현대차 승용 및 스포츠유틸리티차(SUV)생산량은 137만6461대로, 이 중 수출량은 62.7%인 86만2638대를 기록했다. 내수 승용·SUV 판매 비중은 34.8%로 나타났다. 나머지 2.5% 물량은 재고다.
현대차는 수출과 내수 비중을 6대 4 정도로 맞춰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전인 2019년의 경우 현대차는 한 해 승용·SUV를 155만7016대 생산해 63%를 해외로 내보냈고, 36%는 내수에서 소화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물류망이 막히자 내수 비중이 44%까지 올랐다.
현대차는 반도체 수급난으로 생산이 줄었음에도 지난해 내수와 수출 비중을 각각 40.1%, 61.2%(전년 이월 재고 포함)에 맞췄다. 내수 비중을 적게 가져가면서 국내에서는 일부 인기 차종의 출고 대기 시간이 2년이 넘기도 했다. 이에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는 “현대차가 내수를 등한시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국내에서 계약 후 출고까지 24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아반떼 하이브리드의 올해 수출 비중은 78.6%에 달한다. 역시 2년여를 기다려야 하는 SUV 싼타페는 수출 비중이 59%다. 국내 출시가 늦어지자 인기 차종은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중고차 시세가 올라가는 현상도 생겼다.
현대차가 수출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수익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1년 내내 달러 강세가 이어져 수출에 따른 환차익 효과가 컸다. 현대차는 지난 3분기에 역대 최대인 37조705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분기에는 역대 최고 영업이익인 2조9798억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내수 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식고 있다. 지난해 8월 0.5%였던 국내 기준금리는 1년3개월 만에 2.75% 포인트(p) 오른 3.25%까지 상승했다. 기준금리가 오르자 자동차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은행, 카드사, 캐피탈사 등의 조달금리도 올랐는데, 이런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졌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한·삼성·하나·롯데·우리 등 5개 주요 카드사의 자동차 할부 금리는 7.3~10.5%(그랜저·현금구매 비율 20%·할부 기간 36개월 기준) 수준이다. 연초 2%대에서 급격하게 오른 것이다. 일부 캐피탈사는 아예 차 관련 상품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현대차는 국내외에서 약 100만대의 계약 물량이 있다. 국내 적체 기간이 해외보다 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계약물량은 해외보다 국내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리 상승으로 최근 차 구매를 포기하는 소비자가 속출하면서 현대차의 판매 전략이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계약물량은 계약 이후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차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정부가 개별소비세 인하 일몰 시기를 6개월 연장한 것도 이같은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개소세를 기존대로 환원하면 차 가격이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차는 내년 사업 목표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간 최고 실적을 예상하는 현대차는 내년에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전형적으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해외에서 파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건 탄탄한 내수 시장이 뒷받침된 덕분이었다”라며 “내수 수요 감소는 현대차 기반이 흔들리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