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000270)가 화재 위험 가능성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수백만대의 전자제어유압장치(HECU·Hydraulic Electronic Control Unit) 리콜(무상수리)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 차종과 규모가 워낙 커 해당 리콜이 ‘제 2의 세타2 엔진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HECU는 잠김방지제동장치(ABS), 차체자세제어장치(ESC), 구동력제어장치(TCS) 등 제동 관련 장치를 통합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자동차는 제동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 지난 202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HECU 리콜의 주요 결함 내용은 ‘HECU 모듈 내 합선으로 화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HECU 퓨즈를 교체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이 결함과 관련한 리콜은 국내에서 2020년 11월 기아 스팅어 1266대로 시작됐다. 이어 현대차 투싼 5만317대가 같은 이유로 리콜에 들어갔다. 단일 차종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리콜은 2021년 5월 제네시스 G80 22만2084대다. 같은 날 그랜저도 19만1661대가 리콜을 알렸다. 대상 차종 범위는 제네시스 G70, G80, 현대차 그랜저, 싼타페, 맥스크루즈, 투싼, 기아 K9, K7, 스포티지 등으로 꽤 넓은 편이고, 리콜 대수(국내)는 올해 10월 기준 130만대 이상이다.
국내 리콜의 경우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미국에서 해당 문제로 차 소유주들이 현대차와 기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서 결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앞서 현대차·기아는 HECU 오작동으로 전기회로가 끊기면서(전기회로 단락) 주행이나 주차 중에 엔진룸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현대차 아제라(그랜저), 엘란트라(아반떼), 제네시스 G80, 싼타페, 투싼, 기아 카덴자(K7), K900(K9), 세도나(카니발), 쏘렌토 등 총 48만5000대에 대한 리콜을 결정했다. 미국에선 이 문제로 11건의 화재가 보고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2020년에도 유사한 리콜 사례가 있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019년에 현대차·기아 300만대에 대한 안전결함 여부를 조사했는데, 당시 미국 소비자단체는 현대차·기아의 자동차에서 수년 사이 3000건 이상의 비충돌 화재가 발견됐고, 이 일로 100명의 부상자와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HECU 전기회로 단락에 따른 화재로 파악됐다. 현대차·기아는 싼타페 스포츠(싼타페)와 쏘렌토 등 총 59만대를 리콜했다. 이 사례가 포함된다면 HECU 화재 관련 리콜 대수는 200만대를 넘는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 소비자에게 HECU 리콜에 대해 시동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불이 날 수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리콜 대상 차 소유주에게 되도록 차를 야외에 주차하고, 다른 차와 떨어뜨려 놓을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공동주택 비율이 70%를 넘어 미국보다 화재 위험성이 더 큰 국내에서는 해당 리콜과 관련해 주차를 어떻게 하라는 안내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 일과 관련한 국내 화재 보고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차·기아의 HECU 리콜은 세타2 엔진 리콜과 비슷한 점이 많다. 대상 차종이 수백만대에 이르고, 다양하다는 점에서다. 업계 일각에서는 HECU 문제가 ‘제2의 세타2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세타2 엔진은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엔진으로, 엔진 내부 마찰에 의해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제작 결함이 발견됐다. 미국과 한국에서 현대차 쏘나타, 그랜저, 싼타페, 벨로스터, 기아 K5, K7, 쏘렌토, 스포티지 등 400만대 이상의 리콜과 보상이 이뤄졌다. 현대차·기아는 세타2 엔진 리콜에 따른 충당금을 2018년 4600억원, 2019년 9200억원, 2020년 3조4000억원, 올해 2조9000억원 등 7조원 이상으로 잡았다. 현대차·기아의 실적과 품질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힌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의 모듈화, 공동 사용 등으로 최근 자동차는 문제가 생길 경우 대규모 리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세타2 엔진처럼 이번 HECU 리콜 역시 대상 차종이 많고,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현대차와 기아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상 차종이 더 늘어날 여지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