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쉐보레 전기차 ‘볼트EV’를 계약한 A씨는 출고를 기다리는 사이 2023년형 연식변경 볼트EV 모델이 출시되며 300만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차를 선택하면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져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게 사기로 했다.

최근 차량 출고 기간이 길어지고 그 사이 차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한국지엠 노동조합은 “직원들이 차를 살 땐 계약일 기준으로 가격을 받으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 노조는 이번 임단협 협상에서 직원의 차량 구매 할인을 놓고 사측과 협상하고 있다. 지금은 직원이 차를 살 때도 일반 소비자들과 같이 계약일이 아닌 출고일에 실제로 받는 차량의 가격을 지불하는데, 이를 계약일로 바꾸자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전경. /인천 부평구청 제공

이는 신차 출고 적체가 이어지며 소비자 사이에서도 불만 사항으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인기 차종은 1년 넘게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완성차 기업이 부분변경·연식변경 모델을 출시하면 소비자는 돈을 더 주고 부분변경·연식변경 모델을 인수하거나 아예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

한국지엠 노조는 직원 차량 할인을 대상으로 임단협을 진행 중인데, 이 협상이 타결되면 다른 자동차 기업 노조로도 요구안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005380)그룹과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차 등은 직원 할인을 적용할 때 소비자들과 같이 출고일을 기준으로 가격을 산정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노조 요구에 대해 “소비자들도 계약일이 아닌 출고일을 기준으로 차를 구입하는 상황에서 직원들만 계약일을 기준으로 차를 구매하면 소비자 불만이 커질 수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국지엠 노조는 이번 임단협에서 직원의 차량 할인율을 기존 17~23%에서 21~27%로 높이자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직원 할인이 최대 30%, 쌍용차 직원 할인이 최대 25%인 것과 비교하면 직원 차 할인 폭이 작다는 불만이다. 아울러 직원 할인 혜택을 수입 모델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한국지엠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트레일블레이저, 말리부, 트랙스 등에 직원 할인을 적용하지만, 이쿼녹스, 트래버스, 타호, GMC와 같이 수입 판매하는 모델에는 할인을 적용하지 않는다.

한국지엠 노조는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파업 카드를 꺼낼지 고려하고 있다. 지난 16~17일 이틀간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해 83%의 찬성을 얻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22일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며 파업권을 확보했다. 노사는 지난 6월 23일부터 14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직원 차량 구매기준 변경 외에 월 기본급 14만2300원 인상과 통상임금의 400%에 해당하는 성과급(1694만원 상당)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후생복지·수당 인상 등도 요구 중이다. 반면 한국지엠은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며 기본급 4만1000원 인상과 격려금 400만원 지급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