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출고가 지연되면서 작년부터 매장을 찾는 손님이 늘었는데, 올해 차고지 증명제가 도입돼 중고차를 더 많이 보러 오는 것 같아요. 요즘 찾아오는 손님의 절반 이상은 차고지증명제 얘기를 합니다. 거주하는 주택에 주차장이 없다 보니 새 차를 못 뽑아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차를 보러 왔다는 거죠.”

지난 5일 제주시 화북일동의 한 중고차 매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고성민 기자

지난 5일 제주에서 만난 중고차 딜러 한모(45)씨는 올해부터 차고지 증명제가 경·소형차로 전면 확대되자 중고차 수요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차 출고가 많아야 기존 차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나오는데, 신차 출고가 지연되면서 중고차 물건이 많이 줄었다”면서 “차고지증명제로 수요는 늘어 중고차 가격이 엄청 올랐다”고 했다.

◇ 제주에서는 주차장 없으면 신 차 못 사

제주는 올해부터 경·소형차를 포함한 전 차종에 차고지증명제를 도입했다. 차고지증명제는 자동차 소유자에게 자동차의 보관 장소 확보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신차를 구입하거나 주소를 이전할 때 반경 1㎞ 이내 거리에 반드시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 차고지가 없으면 신차 구입이 불가능하고, 이사 가는 곳의 주택에 차고지가 확보돼 있지 않을 경우 최초 적발 시 40만원, 3회 이상 적발 시 매회 60만원 과태료가 매겨진다. 자동차 신규 등록을 줄임으로써 교통난과 주차난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지난 5일 제주시 도남동 한 주택가 주차장의 모습. /고성민 기자

차고지증명제는 2007년 2월 제주시 동(洞) 지역, 대형차(2000㏄ 이상)를 대상으로만 적용돼 점차 확대됐다. 2017년 1월엔 제주시 동 지역, 중형차(1600㏄ 이상)로 확대됐다. 이때까진 제주시 읍·면 지역과 서귀포시는 대상이 아니었다. 2019년 7월엔 제주도 전역과 전기차를 포함한 중형차로 대상이 확대됐고 올해 1월엔 제주도 전역, 전 차종으로 전면 시행됐다.

가구당 주차대수가 1대 이상인 신축 아파트에 거주하는 도민은 차고지를 증명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비증명 차량이 주차장에서 사라지면 출퇴근 주차 전쟁에서 벗어난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주차장이 부족한 구축 아파트나 다세대·다가구 빌라, 원룸 등 거주자들은 자체 주차장을 확보하기 상당히 어렵다. 이 경우 연간 90만원 안팎의 돈을 내고 주변 공영·민영주차장이나 타인 소유 건물 주차장을 차고지로 빌려야 한다.

지난 5일 제주시 화북일동의 한 중고차 매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고성민 기자

차고지 확보가 어려운 제주도민들은 중고차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차고지증명제는 소급 적용되지 않아 ▲2007년 1월 31일 이전에 등록된 대형차 ▲2016년 12월 31일 이전에 등록된 중형차 ▲2021년 12월 31일 이전에 등록된 경·소형차 등을 중고차로 구매하면 차고지증명에서 면제된다.

고건우 제주차파는사람들 팀장은 “차고지증명제 때문에 제주 중고차 시장에선 17년식 미만, 2000cc 미만 차량이 주로 팔리고 있다”면서 “13년식 2200cc 싼타페를 최근 서귀포시에서 매입했는데, 제주도에서는 차고지증명제 때문에 안 팔릴 것 같아 운송비를 30만원을 들이더라도 육지로 보내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차량 등록 줄이는 효과 있지만 “아파트 안 살면 차 못 사” 불만도

차고지증명제가 도입되고 나서 신규 등록 차량이 감소했다. 제주도 통계에 따르면, 리스(장기 임대) 차량을 제외한 도내 운행 차량은 2013~2017년 6년간 연평균 1만8852대 늘었다. 차고지증명제 대상 차량이 확대된 2019~2021년 3년 동안은 연평균 6348대만 늘었다. 도내 운행 차량 증가세가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제주시 용담동·연동·건입동 일대 거주자들이 당근마켓에 차고지증명 용도 주차장과 증명 의무에서 면제되는 중고차를 구한다고 남긴 게시글들. /당근마켓 캡처

그러나 차고지가 없는 제주도민 사이에선 불만이 많다. 차고지증명 용도로 인근 공영주차장을 빌릴 수 있으나, 이를 위해선 연간 9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들은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연 60만원 수준으로 “차고지 구한다”는 직거래 게시글을 다수 남기고 있다. 주차장을 실사용하지 않을 테니 차고지 등록 용도로만 쓰도록 해달라는 제안도 있었다.

지난 6일 제주에서 만난 한 도민은 “비싼 중대형차를 타는 돈 많고 여유로운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돈 없어 경·소형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차고지를 의무화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면서 “아파트 살지 않으면 차 살 생각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제주시 도남동 신성로 공영주차장에 차고지증명제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