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 속에서도 현대차(005380)의 해외 생산은 큰 폭으로 회복된 반면 국내 생산은 전년 수준에 그치면서 해외 공장 생산물량이 국내 공장 생산량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국가별 생산량을 보면 여전히 우리나라가 가장 큰 생산 기지이지만, 해외 공장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현대차가 최근 발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공장의 지난해 생산량은 162만대로 2020년 161만8000여대보다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 사태와 반도체 공급난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 생산량(178만대)의 90%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공장 생산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공급난 때문이다.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는 울산공장은 지난해 3월 반도체 공급난으로 1주일 휴업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부품 수급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설비가 멈춰 섰다.

그래픽=손민균

반도체 공급난에도 해외 사업장의 생산은 큰 폭으로 늘었다. 중국을 제외한 현대차 7개 해외 법인의 지난해 생산 물량은 총 185만대로, 전년(160만대)보다 15.4% 증가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202만대) 생산 규모를 회복하진 못했지만, 반도체 공급난에도 해외 생산은 선방했다는 평가다.

해외 사업장 중에서 생산 규모가 가장 큰 인도의 경우 2019년 68만대에서 2020년 52만대로 생산이 줄었지만, 지난해 63만대 이상으로 회복됐다. 브라질(24.4%)과 터키(18.3%), 체코(15.2%) 공장의 지난해 생산도 두 자릿수 늘었다. 2019년 33만대 이상을 생산했던 미국 공장은 2020년 27만대로 줄었지만 지난해 29만대로 회복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공급난이 세계 모든 공장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유독 국내 생산만 정체된 것은 결국 높은 생산 원가와 낮은 생산성 때문에 국내 공장이 일감을 해외로 빼앗긴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기 전 발생한 ‘맨 아워(man-hour·한 사람이 1시간에 할 수 있는 노동)’ 갈등이다. 당시 현대차 노사는 아이오닉 5 생산에 투입할 인원 수 합의에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기 때문에 생산에 투입되는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노조가 생산에 투입될 인원을 축소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생산 일정이 지연됐다.

지난 10년 동안 해외 사업장의 생산 규모는 계속 커졌다. 2009년 국내 생산량이 160만대일 당시 미국·인도·터키·체코 등 4개 공장의 총 생산량은 92만대 정도였지만, 2010년 처음 100만대를 넘겼고, 이후 러시아와 브라질에도 새로 공장을 설립하면서 5년 뒤인 2015년 해외 생산 규모가 200만대를 넘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베트남을 포함한 7개 해외 공장의 생산량이 160만대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185만대를 회복했다.

반면 국내 생산량은 2012년 190만대를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15년까지만 해도 연간 185만대 이상을 생산했지만, 2019년 170만대로 줄었고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160만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기차가 주요 제품이 되는 미래차 시대에 해외 생산 기지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현대차는 이달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중장기 전동화 전략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전기차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을 확대해 글로벌 전기차 생산 최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내와 체코 공장이 중심인 전기차 생산기지를 보다 확대하겠다는 것인데, 가장 먼저 올해 완공한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연내 전기차를 현지 생산한다. 현대차는 기존 생산 공장 외에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