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게임 체인저는 전기차가 아닌 스마트카입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며, 자율주행이 과거에는 없었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최근 자동차 업체들은 사람의 개입이 거의 필요 없는 수준의 자율주행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차량을 원격으로 제어하고,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통해 차량 성능도 향상시킨다. 차 안에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통해 결제도 가능하다.

차량용 소프트웨어(OS)의 기능이 차량 전반을 제어하는 수준까지 확장되면서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라는 말도 생겨났다. 스마트카의 등장으로 자동차·IT 산업 전반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2022 CES'에서 관람객들이 첨단 센서가 부착된 현대모비스 자율주행 컨셉트카 엠비전 투고(M.VISION 2GO)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현대모비스 제공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수단에 불과했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IT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출시되는 차량들은 통신과 연결되고 전자장비(전장) 비중이 커지면서 '도로 위의 스마트폰'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자동차는 스마트폰이 진화해온 것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휴대전화의 목적이 통화뿐이었으나 지금은 각종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돼 인터넷 검색, 쇼핑, 음악 등도 즐길 수 있게 된 것 처럼 자동차 역시 소프트웨어로 통제되고 정의대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SDV는 설계부터 생산, 소비자가 이용하는 과정까지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을 바꾸고 있다. SDV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이동수단이어서 소프트웨어를 최적의 상태로 구동할 수 있도록 이에 맞춰 하드웨어를 디자인한다. 하드웨어는 주로 전자제어장비나 통신장비를 말한다.

SDV 기반의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유리하다.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의 파워트레인(동력 전달 기구)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적어 활용할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여유 공간에 각종 ICT 기기를 탑재할 수 있다.

제네시스 카페이./제네시스 제공

특히 전기차는 주행거리·안전성 등이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구동방식, 배터리 관리, 공조 등을 통합형 OS로 제어하는게 최근 자동차 업계의 화두다.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구글 안드로이드를 활용하거나 자체 개발을 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통합형 OS를 구축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빅테크 업체와 협업하면서 경쟁도 하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스텔란티스, 혼다, 볼보, 르노·닛산 등은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활용하고 있으며 테슬라, 다임러, 도요타, 폭스바겐, 현대차(005380)그룹 등은 자체 개발을 추구한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활용하면 안드로이드에 익숙한 소비자가 기존의 경험을 자동차까지 쉽게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페이스 차별화에 제약이 있고, 핵심 역량을 외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동차 소프트웨어 생태계로부터 수익 창출도 제한된다.

통합형 OS를 자체 개발하는 경우 브랜드의 차별성을 쉽게 확보할 수 있고,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할 수 있다. 다만 운영체제가 자사 완성차에만 적용될 경우 사용자가 부족해 자체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 성공이 불확실한 OS 개발을 위해 인력과 자금 등 자원 소비가 많아지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 이 개막한 1월 5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마련된 소니 부스에 전기 SUV 콘셉트카 '비전-S 02'가 전시돼 있다. 소니는 이번 전시회에서 전기자동차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선언했다./연합뉴스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가 주도하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화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손잡고 AI 기반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작년에는 현대차그룹 내 IT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토론을 합병하며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비에 나섰다.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간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애플과 소니 등 전통적인 빅테크 업체들도 스마트카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애플은 2014년쯤부터 '타이탄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애플카 개발을 진행해오면서 현대차·기아, BMW, 도요타, 닛산 등 다양한 완성차 업체들과도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 기업 소니도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소니는 CES 2022에서 7인승 SUV 전기차 비전-S 02를 최초 공개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가 통합형 OS를 적용해 소비자가 그 결과물을 비교하게 되는 시점은 2024년 전후로 예상된다"며 "이때까지의 기간이 미래차 OS 경쟁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완성이 늦어지는 기업이나, 타사보다 부족한 결과물을 만드는 기업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