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 혼자 이탈리아 여행을 했었는데요. ‘카우치 서핑’이라는 여행자용 비영리 커뮤니티 서비스를 이용해 현지 가족이 사는 집의 방 하나를 빌려 묵게 되었어요. 좋은 리뷰가 200개나 달린 곳이어서 의심치 않고 자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깨니 그 집 아들이 방에 들어와서 음란행위를 하는 거예요. 나중에 찾아보니 혼자 여행하며 비슷한 피해를 본 여성 여행자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여성들이 믿을 만한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김효정(32) 대표가 2019년 설립한 여성 특화 여행자 앱 ‘노매드헐’은 이런 이유로 태어났다.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노매드(nomad)’와 여성을 지칭하는 ‘헐(Her)’의 합성어다. 노매드헐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여행자의 80%가 혼자 여행하기를 희망하지만, 74%가 안전 문제로 주저한다고 한다.
회사 본사는 김 대표의 고향인 부산에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콘텐츠를 영어로 제공하며 사실상 글로벌 여성 여행자 전체를 공략한다.
프랑스의 유명 스타트업 지원센터인 ‘스테이션F’에도 입주해 있다. 김 대표가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지낸 데다 전 세계 여행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도시 중 한 곳인 만큼 관련 인프라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현지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노매드헐은 신분증과 셀카 인증을 통해 여성 여행자만 이용할 수 있는 실명 기반의 서비스다. 여행 목적지와 기간을 설정하면, 같은 기간 여행지를 찾는 여성 여행자가 뜨고 이를 통해 마음에 맞는 동행자를 구할 수 있다.
안전한 숙소 추천, 여행지 정보 공유 등 의견을 주고받는 커뮤니티 활동도 할 수 있다. 자주 올라오는 데이터를 모아 매주 콘텐츠도 제공한다.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위한 모로코 가이드북’과 같은 식이다. 190개국의 여성 여행자 30만 명을 가입자로 확보하고 있다.
김 대표는 “도시 기준으로 보면 현재 노매드헐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국가는 1위가 뉴욕(미국), 2위가 파리(프랑스), 3위가 런던(영국), 4위가 베를린(독일)”이라며 “이들이 주로 서울, 도쿄(일본), 발리(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를 여행할 때 동행자와 정보를 구하는 용도로 많이 쓸 정도로 현재는 서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노매드헐이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회사는 지난 9월 말 부산에서 대대적으로 글로벌 여성 여행자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전 세계 여성 여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행을 통한 성장 경험과 영감을 나누고 혼자 여행에 대한 용기와 팁을 공유하는 자리다. 20개국 1000여 명의 여행자들이 참석했다.
노매드헐은 어느 정도 사용자 기반을 확보한 만큼 본격적으로 수익 모델을 내놓고 돈을 벌겠다는 구상이다. 여성들만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을 파트너와 함께 제공하고, 수익의 20~30%는 수수료로 가져가는 모델이다.
김 대표는 “많은 여성 여행자의 고민은 일반적인 관광지 구경이 아니라 각종 체험형 활동(액티비티)을 즐기고 싶은데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이라면서 “노매드헐은 여성이 운영하는 로컬(현지) 서핑, 다이빙, 등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2만 원부터 400만 원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주로 한국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선보였지만, 내년부턴 발리, 방콕, 두바이, 파리 등으로 지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 여성 여행자를 겨냥한 숙소나 쇼핑 관련 광고도 수익모델 중 하나다.
노매드헐은 사업 유망성을 인정받아 국내 벤처캐피털(VC)로부터 최근 10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NBH캐피탈, 씨엔티테크, 코스넷기술투자의 충남-NCK디지털관광조합,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가 참여했다. 김 대표는 내년 하반기 글로벌 VC를 대상으로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목표다.
그는 “노매드헐은 작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전 세계 200여 개 여행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모전에서 여성 임파워먼트(역량 강화) 부문 1등을 했었다”며 “해외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실적으로 성장성을 증명해 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