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페인트(090350)의 안양시 박달동 페인트 공장이 이르면 2026년 이전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안양시가 이 박달동 일대에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 기업 등을 유치해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 조성에 나서면서다.

노루페인트는 이 박달동 부지의 3분의 1에 달하는 땅을 보유하고 있는데, 안양시와 갈등을 빚으며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50년 향토기업 노루페인트 vs 안양시, 첨단산업단지 추진

11일 안양시 및 페인트업계에 따르면 노루페인트는 지난 5월 27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 공장 부지 내 연구단지 증축을 위해 안양시에 건축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안양시는 지난달 말 열린 건축위원회 심의에서 노루페인트가 제출한 연구단지 건립 불허 방침을 결정했다. 노루페인트 공장이 안양시가 추진 중인 지식첨단산업단지 조성에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노루페인트는 지난 1974년 박달동에 본사를 짓고 현재 생산동, 연구단지, 물류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2차전지 셀과 모듈, 팩에 적용할 수 있는 접착제, 항공기에 사용되는 도료 등 신사업 강화 차원으로 이 공장 부지 내 연구소 증축에 나섰다.

이를 통해 노루페인트는 ‘에너지, 첨단 소재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안양시의 연구단지 증축 불허로 제동이 걸렸다.

그래픽=손민균

안양시는 안양도시공사와 노루페인트를 포함해 20여 개 기업이 입주한 박달동 일원에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면적은 31만㎡(약 9만3775평)로,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 분야 기업이 입주하는 첨단산업단지와 공동주택 등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약 1조3800억 원이다.

안양시와 공사는 지난 2021년 이 사업에 나섰고, 현재 산업단지 입주 수요 조사, 기업 유치 전략 및 출자 타당성 검토용역을 진행 중이다.

안양시와 공사는 내년 상반기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특수목적법인(PFV)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르면 2026년 착공에 들어간다.

문제는 박달동 개발 예정 용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이전해야 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노루페인트, 코카콜라, CJ프레시원, 모트라스, 하이트진로, 고려부품, 광동제약 등 20여 개 기업이 이곳에 들어서 있다. 특히 노루페인트가 땅의 약 35%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안양시와 공사는 현 입주 기업들이 새롭게 조성될 박달동 첨단산업단지에 다시 입주할지, 또는 보상을 받고 나갈지 등 의견을 듣기 위해 연내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도권 정비 계획법 등에 따라 도시환경을 정비하는 동시에 첨단산업시설을 유치하는 사업 방향에 맞춰, 노루페인트 공장 등 기존 제조시설 대부분은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양시 관계자는 “IT, BT, 나노기술(NT), 환경공학기술(ET) 등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단지 조성 방향에 맞춰 기존 공장 설비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루페인트 안양공장 전경. /안양시 제공

◇2014년 에폭시 누출 사고…노루페인트 공장 이전 논의

사실 노루페인트의 안양 박달 공장 이전은 2010년 이후 꾸준히 논의돼 왔다. 2014년 9월 노루페인트 공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인 에폭시 누출 사고 이후 공장 이전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사고로 노루페인트 공장 주변 지역 주민 100여 명은 두통과 설사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았고, 이에 안양시와 노루페인트 그리고 피해를 입은 주민 대표는 공장 이전 등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후 회의 결과 노루페인트는 문제가 됐던 생산시설을 약 3년에 걸쳐 단계별로 이전했다. 그러나 주민 대표는 안양 박달 공장의 완전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안양시의 첨단산업단지 조성에 맞춰 노루페인트 공장 이전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루페인트가 연구단지 증축에 나서자, 안양시가 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을 내세우며 불허에 나선 것이다.

안양시 관계자는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약 2~4년 후) 이곳 생산시설 등을 허물어야 하는데, 새로운 연구단지를 짓는 것은 비용 낭비”라고 설명했다.

◇ “단순 공장 이전 넘어, 1800명 근로자 가족 삶의 터전 잃어”

노루페인트는 생산공장 이전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50년 동안 안양 박달동에서 사업을 한 향토기업으로, 단번에 핵심 생산시설 등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단순히 공장 이전을 넘어, 안양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루페인트 임직원이 1000여 명이고, 그 가족을 포함하면 약 1800명이 안양시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다”며 “공장 이전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입주 기업도 노루페인트와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기업 몇 곳을 중심으로 단지 개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양시가 계획 중인 첨단산업단지에 입주한 주요 기업 인력이 총 5000여 명이고 이들의 가족을 합하면 1만3000여 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안양시를 떠난다면 첨단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한 역효과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기업과 그 임직원을 끌어안을 수 있는 도시 개발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우선 첨단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떠나는 기업이 많은지 새롭게 들어오는 기업이 많은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역할을 했던 기업들의 이전보다는 이 기업에 더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해 지역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