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이 성장하면 폐배터리 물량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 폐배터리의 잔여 수명·용량을 파악하려면 10시간씩 걸렸는데, 우리 회사 기술을 쓰면 수초 만에 잔량을 파악, 어떤 배터리는 재활용하고, 폐기 처분할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일본 도쿄 토라노몬 힐스 모리 타워에서 만난 고이쿠배터리의 타바타 아키라 대표, 타바타 이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같이 말했다. 2014년 일본 오사카에서 설립된 고이쿠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잔량을 10초 내에 진단하는 기술을 특허로 보유하고 있다. 이를 진단하는 장치 개발도 마쳤다.

지금까지 배터리 잔량을 측정하려면 배터리를 100% 충전했을 때 방전한 양을 용량으로 산출해 왔다. 이는 시간·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고이쿠배터리는 충전하는 순간 리튬이온이 들어가는 전극의 반응 면적으로부터 용량을 역산하는 방식으로 단 수초 만에 이를 구현한다. 배터리를 차량에서 분리하지 않고, 충전해 보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배터리 잔량 측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고이쿠배터리의 타바타 아키라 대표(왼쪽), 타바타 이지 COO. 고속 배터리 잔량 진단 기술로 GS벤처스로부터 약 7억원을 투자 받았다. /도쿄=장우정 기자

이날 도쿄에선 GS(078930)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GS벤처스가 고이쿠배터리 측에 8000만엔(약 7억원)을 투자하는 계약 체결식이 열렸다.

GS는 전기차 충전 사업자 1위인 GS차지비와 전국 500여개 자동차 정비소 ‘오토오아시스’를 운영 중인 GS엠비즈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홍석현 GS벤처스 이사(투자심사역)는 “전기차 시대에 고이쿠배터리의 배터리 진단 기술이 사업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GS에너지·GS건설이 폐배터리 재활용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어 여기에서도 협력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타바타 COO는 “전기차 정비소나 중고차 판매회사가 배터리 잔량 등을 기반으로 차의 남은 가치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전기차 잔존가치 평가, 수명 예측 증명서를 발행하는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수익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기차뿐 아니라 리튬이온배터리가 들어가는 휴대전화 등 장비를 리스해 주는 회사가 이를 회수했을 때 얼만큼 더 쓸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있다.

회사는 고속 배터리 잔량 진단 장치 개발을 마친 만큼 이를 제조하기 위한 장비를 투자금으로 구매할 예정이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술 개발과 인재 확보에도 투자금을 쏟는다.

그동안 보수적이었던 일본 창업계는 2022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일본은 2027년까지 10조엔(약 88조원)을 투자해 스타트업 10만개,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100개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타바타 대표는 “일본 대기업들이 20년 전 사내 혁신팀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신사업을 육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보수적이고 매뉴얼을 중시하는 문화 탓에 실패했었다”며 “최근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이뤄지진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에는 숨겨진 기술 좋은 회사가 굉장히 많은 만큼 한국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발굴해 투자해 준다면 사업화에 속도를 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