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케이(K)유통망이 빠르게 촘촘해지고 있다. 편의점 GS25에서 한국식 도시락과 즉석식품을 즐기고, 롯데 복합 쇼핑몰에서 K푸드·K뷰티 브랜드를 경험하는 소비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베트남을 과거처럼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닌 '제2 소비 시장'으로 본 국내 유통·식품기업들은 현지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11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베트남 현지 유통망과 소비 접점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제품 생산·물류·유통 브랜드 경험을 현지에 함께 구축하는 방식이다. 기업들이 베트남에 집중하는 배경으로는 젊은 인구 구조와 소비 방식 변화가 꼽힌다. 베트남은 인구 1억명 규모의 시장이다. 이 중 소비력이 높은 40대 이하 젊은 층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한다. 여기에 배달 플랫폼과 모바일 소비가 빠르게 일상화하면서 편의점·간편식·프랜차이즈 중심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분위기다. 싱가포르 벤처캐피털(VC) 모멘텀 웍스(Momentum Works)에 따르면 베트남 배달앱(온라인 음식 배달) 시장 규모(총거래액·GMV 기준)는 지난해 기준 21억달러(약 3조477억원) 수준이다. 전년 대비 약 19% 증가한 수치다.
최근엔 음식 배달 플랫폼이 장보기·편의점 배송 등 퀵커머스 영역까지 확장하면서 생활 밀착형 소비 경쟁도 치열해지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베트남 퀵커머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8억1000만달러(약 1조1756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오는 2030년 13억2000만달러(약 1조9158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그랩(Grab)·쇼피(Shopee) 등 현지 플랫폼들도 편의점·간편식·생필품 소비로까지 퀵커머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에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현지 소비자의 생활 동선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유통망 구축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배달앱·퀵커머스와 모바일 소비 확산으로 음식·간편식·쇼핑 등 생활 밀착형 소비 채널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베트남도 스마트폰 하나로 음식 배달 주문부터 장보기·편의점 배송까지 연결되는 생활 플랫폼 형태로 소비 문화가 변하고 있다"며 "결국 소비자 일상 속 접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되는 구조"라고 했다.
특히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전략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지 공장을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던 방식을 넘어 현지 소비자의 생활권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전략으로 유통망과 브랜드 경험 자체에 힘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 베트남 일상 속으로 들어간 K유통·식품사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그룹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23일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롯데센터 하노이 등을 점검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호텔·아쿠아리움 등을 결합한 복합몰이다. 롯데에 따르면 2023년 개장 이후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의 누적 방문객은 3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6000억원에 달한다.
편의점 업계도 베트남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편의점 GS25 운영사 GS리테일(007070)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베트남에 개장한 GS25 매장 수는 총 422개로, 호찌민·하노이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점포망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한국식 도시락과 즉석식품, PB(자체 브랜드) 제품 등을 앞세워 현지 젊은 소비층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젊은 소비층은 단순 구매보다 브랜드 경험 자체를 소비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음식과 K콘텐츠, 엔터테인먼트 등이 결합한 체험형 소비 전략이 확산하는 이유"라고 했다.
식품업계도 베트남 공략법을 다변화하고 있다. CJ제일제당(097950)은 베트남 1위 유통체인 '박화산(Bách Hóa Xanh)'과 협업해 K푸드 확산에 나섰다. 오리온(271560)은 쌀과자 '안(An)' 등 현지 맞춤형 제품 확대와 공장 증설을 통해 베트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고, 대상(001680)은 김·김치·떡볶이 등 K푸드 제품군 확대하고 현지 생산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오뚜기(007310)는 베트남 북부·남부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현지 라면·소스류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고, 팔도는 현지 제2공장 증설을 통해 라면·음료 생산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하림(136480)도 삼계탕 제품의 베트남 수출 승인을 확보하면서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 외에 카페 프랜차이즈 더벤티는 베트남 호찌민 핵심 상권인 '펄 프라자'에 3호점을 열고 현지 맞춤형 메뉴와 K카페 공간 경험을 제공했고, 신세계(004170)백화점은 하노이에서 K뷰티 쇼케이스를 열어 현지 협력 확대에 나섰다. LF의 남성복 브랜드 마에스트로도 하노이 프리미엄 상권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지 소비자 일상 속에 한국식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녹여내려는 경쟁이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이를 선점한 기업일수록 향후 K소비 확대 국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당분간 베트남 진출 국내 기업들은 현지 소비자 일상을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엔 생산 기지나 현지화 전략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 콘텐츠와 연결된 소비 경험 자체를 현지에 녹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와 한국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전략이 더 중요해진 셈"이라며 "특히 젊은 소비층 비중이 높은 베트남에선 K콘텐츠와 생활 소비가 결합할 경우 브랜드 확장성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