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화학 비료를 대량 생산하는 혁신적인 공법을 고안해 냈다. 이는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그 공로로 1918년 하버에게는 노벨 화학상이 수여됐다. 이후 수십 년간 화학 비료와 농약은 전 세계 농업의 표준이자 현대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와인 산업 역시 이 거대한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포도밭에는 수확량을 비약적으로 높이기 위한 화학 비료가 뿌려졌고, 곰팡이와 진딧물 등 병충해를 저렴하고 확실하게 막기 위해 농약이 도입됐다. 인위적인 통제를 통해 와인 생산자들은 매년 일정한 수확량과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대가로 포도나무가 뿌리 내린 지역의 개성과 해마다 다른 빈티지의 특성은 점차 희미해졌다.

효율 중심의 농법이 가져온 부작용은 수십 년 뒤에야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과도하게 사용된 화학 비료는 지하수와 토양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됐고, 인위적인 양분에 길들여진 토양은 자생력을 잃고 황폐해졌다. 이러한 산업화된 양조 방식에 회의를 느낀 생산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일이다.

프랑스 보졸레의 마르셀 라피에르(Marcel Lapierre)와 그의 스승 쥘 쇼베(Jules Chauvet)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화학 제품과 인위적인 첨가물을 배제하고, 포도밭의 생태계를 회복시켜 포도 본연의 생명력을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 인위적인 배양 효모 대신 포도 껍질에 붙은 자연 효모로 발효를 진행하며 생산량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토양과 기후의 흔적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오늘날 내추럴 와인의 시작점이 된 셈이다.

그래픽=정서희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오뇨스트로(Ognostro)'는 이러한 내추럴 와인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와이너리다. 이곳의 생산자 마르코 티네(Marco Tinessa)는 본래 금융업에 종사하던 인물이었으나, 고향 땅이 가진 잠재력을 와인으로 표현하고자 양조의 길로 들어섰다. 와이너리 이름인 '오뇨스트로'는 나폴리 방언으로 '잉크'를 뜻하는데, 이는 포도와 토양, 그리고 흐르는 시간을 와인 병 속에 그대로 담겠다는 그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는 시칠리아 내추럴 와인의 거장 프랑크 코넬리센(Frank Cornelissen)으로부터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양조학을 전수받았다. 대규모 관개 시설을 설치해 인위적으로 물을 대는 대신 자연 강우에 의존하며, 포도나무가 스스로 물과 영양분을 찾아 베수비오(Vesuvio)와 캄피 플레그레이(Campi Flegrei)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미네랄 풍부한 토양 깊숙이 뿌리를 내리도록 관리한다. 화학 비료 없이 오직 지력만으로 포도의 풍미를 응축시키는 방식이다.

오뇨스트로의 화이트 와인은 캄파니아를 대표하는 품종인 피아노(Fiano)를 사용한다. 피아노는 이탈리아 화이트 품종 중에서도 뛰어난 숙성 잠재력과 우아함을 자랑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오뇨스트로는 평균 수령이 30년에서 60년에 달하는 고목(Old Vine)에서 수확한 포도만을 사용해 깊이를 더한다.

양조 과정 역시 세심하다. 포도 껍질과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접촉시켜 발효를 진행하며, 와인의 본연의 구조감을 살리기 위해 별도의 정제나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산화 방지를 위한 이산화황(SO₂) 사용도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젖산 발효를 거친 와인은 콘크리트 탱크와 세라믹 암포라에서 9~12개월간 숙성되며, 병입 후에도 1년간의 추가 숙성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말린 꽃과 생강, 싱싱한 감귤류의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입안에서는 잘 익은 살구와 사과의 풍미가 이어진다. 여기에 견과류와 꿀의 뉘앙스, 화산토 특유의 짭짤한 미네랄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내추럴 와인 부문에서 '베스트 오브 2026'을 수상했다. 국내 수입사는 나라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