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시간 제한 없는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된 가운데, 정치권 안팎으로 관련 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신선식품 온라인 배송 허용 여부를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이 격화하면서 법 개정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30일 유통업계·정치권에 따르면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의 시간 제한 없는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발의 이후에도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규제 완화를 통한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핵심 쟁점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논의 자체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5일 대형마트와 SSM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대형마트 등의 오프라인 영업 규제는 유지하되, 의무휴업일과 심야 영업 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은 제한 없이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통 채널 간 규제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그간 대형마트·SSM 등은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으로 온라인 전환에 제약을 받아왔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시간 규제 없이 배송 서비스를 확대해 왔다. 산업통상부의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온라인 유통 비중은 2020년 48.2%에서 2025년 59%까지 커졌다.
본격적인 논의가 멈춘 가장 큰 이유는 '신선식품'을 온라인 배송 허용 대상에 포함할지를 두고 이해관계가 충돌한 탓이다. 유통업계는 신선식품이 온라인 장보기의 핵심 품목이라는 점에서 이를 제외하면 규제 완화 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신선식품은 온라인 장보기의 핵심 품목이다. 이걸 빼면 온라인 배송을 통한 규제 완화는 실효성이 없다"며 "온라인에 치우친 유통시장에서 최소한의 경쟁 환경을 맞춰줄 거라면 품목 제한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소상공인단체는 신선식품은 전통시장과 직접 경쟁하는 영역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에서 신선식품까지 허용하게 되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대기업 중심 유통 구조가 지금보다 더 강화되면 그 자체로 생존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일한 품목을 두고 '경쟁력 회복 수단'과 '생계 위협 요인'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맞붙으면서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쿠팡·네이버 등의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유통은 급성장한 상황이다. 이미 소비 구조가 온라인 중심으로 변한 상황에서 대형마트의 온라인 새벽배송을 두고 이해관계까지 충돌하면서 정책 논의 자체가 '제로섬' 구도로 치닫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를 통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대형마트 측 입장과 기존 오프라인 수요마저 잠식될 경우 버티기 어렵다는 골목상권의 입장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양쪽 모두 생존의 기로에 선 상황"이라고 했다.
정치적 변수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소상공인단체들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 중단'을 요구하며 반발 수위를 높였다. 최승재 전 국민의힘 의원, 오세희 민주당 의원 등 관련 단체 출신 인사들이 입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가운데,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통시장 상인층 표심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한 상태다. 제도 개선 필요성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이해관계 충돌이 큰 사안을 선거 전에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주된 시각이다. 정부는 4월 중 이해당사자 의견을 조율해 상생안을 마련한 뒤 법 개정 타임라인을 정하는 등 재논의에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 소비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는 이유로, 규제 완화 방향을 온라인 배송 확대로 잡는 건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며 "법 개정 논의 전 충분한 공론화와 이해관계 조정을 이룬 후 온·오프라인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상공인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에선 당장 법 개정 논의가 속도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 구조가 이미 바뀐 만큼, 관련 제도를 손볼 필요성은 분명하다. 선거가 끝난 후 보완책 마련 등을 통해 법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