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새벽배송 허용을 포함한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본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낸 시장의 변화와 그 이면을 짚고 변화한 유통 환경에 걸맞은 규제의 방향과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유통 정책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 일변도로 지난 10년 넘게 이어졌던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은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공룡 쿠팡이라는 변수가 나오면서 규제 완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만큼은 정치 논리 대신 산업을 제대로 보고, 표심보다는 다수의 소비자 후생을 감안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산업 부흥과 상생 중심으로 법 개정 논의해야"
"듣기 좋은 말만 가득한 추상적인 법 개정에 나서선 안 됩니다."
18일 유통업계와 관련 학계 관계자들이 유산법의 개정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지난 10년 간 규제가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상생을 위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에 따라 2013년 이후 유산법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 강화를 중심으로 논의가 흘렀지만, 결과는 이커머스 쿠팡의 독주였다.
유산법은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정치적인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숫자를 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그동안 다양하게 수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폐점하면 오히려 인근 상권의 소비는 약화했다. 한국은행이 서울시 대규모 점포 인허가 정보를 바탕으로 2020년 11월과 12월에 폐점한 롯데마트 도봉점과 구로점 주변상권을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폐점이 반경 2㎞ 주변상권 매출액을 5.3% 정도 감소시킨 것으로 집계됐다. 주중 매출액과 주말 매출액도 각각 5.0%와 7.8%가량 줄었다.
학계에서는 대기업과 소상공인으로 나눠서 산업을 바라보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말했다. 구진경 산업연구원 신성장동력연구실장은 "지금의 유산법은 2013년 개정 기준으로 오프라인 마트에 대한 규제 중심의 내용이다. 디지털로 전환된 소비 시장의 변화, 글로벌 유통 경쟁 심화 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과거 오프라인 규제 중심의 유산법은 근본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 규제 풀어야"
전문가들은 대형마트와 소상공인, 전통시장 등을 아우르는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에 대한 진흥책이 나와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핵심은 소비자를 다시 오프라인 현장으로 불러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는 "과거에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골목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부각됐지만,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바뀐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온·오프라인 간 규제 차별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10여 년 전엔 대형마트가 유통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온라인 쇼핑(이커머스)이 주도하고 있다"며 "규제가 소상공인을 보호하기보다 이커머스만 키워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두면 안 된다"고 했다.
현재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만 일부 완화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의무 휴업일 규제까지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오프라인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부분적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 방문이 집중되는 주말 영업 허용이 중요하다"며 "가족 단위 소비자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식사·문화 활동까지 이어가도록 해야 온·오프라인 유통업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비로소 평평해지고 오프라인 유통 전반 경쟁력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의무휴업일 완화를 단순히 대형마트 지원책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일단 소비자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많은 소상공인과 중소 협력사가 오프라인 유통 생태계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규제 완화 과정에서 소상공인에 대한 별도의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구 실장은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소규모 소매업자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단순히 영업시간이나 지리적 분리를 넘어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산업 차원의 지원책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