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삼삼오오 천막 아래 모여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라면을 구입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거나, 조리된 라면을 받기 위해 간이음식점마다 몰려 있는 인파. 교통이 통제된 폭 21m, 길이 475m 도로 위 곳곳에 라면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지난 1일 열린 구미 라면 축제의 모습이다.
구미 라면 축제는 구미시가 국내 최대 신라면 생산 공장인 농심(004370) 구미공장을 품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기획된 지역 축제다. 2022년 첫 행사가 진행돼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구(舊)도심 살리기 등 다양한 지역 상생적 요소가 담긴 축제이면서도 방문객 10만 명을 기록하는 구미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국내 유일 도심 속 라면 축제이기도 하다.
올해는 ‘세상에서 가장 긴 라면 레스토랑’을 콘셉트로 구미역 앞 도로에 라면 거리를 조성해 진행됐다. 지역 내 셰프 15팀을 선발하여 라면을 활용해 개발한 다양한 메뉴를 판매한다. 구미 외 지역에서 판매되는 이색 라면 3개도 판매된다. 일본·인도네시아·베트남·대만 등 자매 결연 국가의 면 요리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지역 내 셰프들은 구미 구도심을 비롯한 전역에서 분식집을 비롯해 고깃집·주점·푸드트럭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을 선발했다. 축제 전 심사를 거쳐 28개 팀 중 15개 팀을 선발했다. 라면에 토핑을 더한 해물 라면이나 돈가스라볶이부터 라면을 활용해 만든 샌드위치와 타코, 미고랭, 볶음밥까지 다양한 메뉴가 선보였다.
농심은 축제에 ‘갓 튀긴 라면’을 공급한다. 축제 장소가 농심 구미공장에서 불과 5㎞ 떨어져 있어 수 시간 전에 생산한 라면을 제공하는 것이다. 브랜드 홍보관과 체험 부스 등을 만들어 축제를 찾은 방문객은 물론 소셜미디어(SNS) 홍보 등에 사용하기도 한다. 올해 축제에는 신라면 브랜드관과 신제품 ‘신라면 툼바’ 시식관 등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지역 대학과 연계해 만든 AR(증강현실) 포토존 등 체험관을 운영하기도 하고, 라면 공작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라면 공작소에서는 스프와 말린 채소·고기·계란 등 농심이 라면 제조에 사용하는 원료를 소비자가 직접 선택해 기호에 맞는 라면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다양한 체험 거리가 조성되면서 라면 축제는 구미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해 라면 축제 방문객 가운데 36%(약 4만 명)는 다른 지역에서 온 것으로 조사됐다. 또 축제 기간 인근 상권에서 소비된 금액은 전후 1주일 대비해 약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축제를 즐기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울산에서 구미를 찾은 김민아(10)양은 “처음 보는 신기한 라면들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며 “물라면을 먹었는데 맛있었다”고 했다. 김양 가족은 구미가 그다지 멀지 않음에도 이날 처음 방문한다고 했다.
◇ 대표적인 K푸드 ‘라면’… 인도네시아 학생들도 축제 즐겨
라면 축제는 구미의 구도심인 구미역과 구미새마을중앙시장 인근을 되살리기 위해 기획된 축제지만, 농심으로서는 톡톡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0만 명이 방문하는 축제인데다, 라면 연간 수출액이 10억달러(10월 기준)를 돌파하면서 해외 소비자들에게도 한국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온 닐완(21)씨는 “구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3개월 방문했는데 마침 열린 라면 축제에 오게 돼 좋다”면서 “신라면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브랜드”라고 했다. 그는 친구 6명과 함께 축제를 찾았는데 모두 신라면을 맛있게 즐겼다고 설명했다.
구미시 역시 외지인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미국에서 라면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하면 상위 10개 제품 안에 한국 브랜드 4개가 포함되고 그중 1위는 신라면이라고 한다”면서 “구미는 그 신라면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라 이를 토대로 라면 축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라면 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꿈이 있다”고 했다.
윤성진 구미 라면 축제 총괄기획단장 역시 “아직 수치적으로 몇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라면 축제를 알리기 위해 해외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 팸투어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외국인들이 스스로 자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방식을 활용해 라면에 관심이 높은 전 세계 사람을 대상으로 라면 축제를 알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한식”이라며 “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 음식을 경험하고 싶어 여행을 왔다면 구미로 올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미의 도시명이 단맛이 나는 씹는 간식을 뜻하는 영어 단어 구미(Gummy)와 유사한 점 등을 활용하여 세계적인 식품 산업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실제로 한국 라면은 지난 10월 기준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대표적인 케이(K)푸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수출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10억달러를 라면 개수로 환산하면 20억6522만개로, 1초에 79개씩 해외로 팔려 간 셈이다.
국내 라면 시장 과반을 점유한 농심도 라면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관광객 방문을 유도할 계획이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을 주제로 하는 구미시 대표 지역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