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단행됐던 신세계그룹의 2024년 정기 임원 인사에선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룹의 양대 축인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 대표이사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습니다. 올해 실적이 썩 좋지 않은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은 수세에 몰린 듯 비상 경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국내 유통업계에서 신세계그룹 출신들의 활동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점점 외연을 넓혀가는 중입니다.

그래픽=손민균

◇ 외연 넓혀가는 신세계 출신 인사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가장 최근엔 SPC 대표이사 자리를 신세계그룹 출신 인사가 차지했습니다. 임병선 총괄사장(62)이 그 주인공입니다. 1962년생인 임 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부문 부사장, 신세계까사 대표이사,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부사장 등을 거친 경영 전문가입니다.

KFC코리아의 신호상 대표(46)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년 이마트24에서 마케팅 담당 상무를 지냈고 작년 5월 KFC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후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인스타그램에 “후배가 (KFC) 사장으로 갔는데 많이들 바뀌었으니 먹어들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오리온은 신세계그룹 출신 인사들이 터를 잡은 지 오래입니다.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64)이 대표적입니다. 허 부회장은 2011년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사장, 2012년 이마트 사장을 지낸 후 2014년부터 오리온에 합류했습니다. 현재까지 4연임에 성공하면서 10년 가까이 오리온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는 주요 보직을 신세계그룹 인사로 채웠습니다. 오리온 임원 중 신세계 인사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총 8명입니다.

허 부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박성규 오리온 지원본부 부사장(60)은 2012년까지 신세계 경영전략실 재무 담당 상무를 맡았고 이후 2014년까지 이마트 경영지원본부 재무 담당 상무를 지내다가 2015년 오리온에 합류한 인사입니다.

오리온그룹의 미래 먹을거리 사업인 바이오 계열사를 맡은 김형석 오리온바이로직스 대표(오리온 신규사업팀 전무·61)도 2000년부터 이마트에서 인사와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2016년부터 오리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담서원 오리온그룹 상무와 함께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자리라 부담이 큰 자리에 앉아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오리온 그룹의 인사와 재무도 모두 신세계 그룹 출신이 맡고 있습니다. 신세계 전략실 인사 팀장과 신세계푸드 인사 담당 상무를 맡았던 김석순 상무(54)가 오리온에서도 인사 업무를 맡고 있고, 신세계푸드 재무팀장을 담당했던 김영훈 상무(52)도 오리온에서 재경 업무를 이끌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최근 오리온에 합류한 장혜진 홍보팀 상무(54)도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서 신세계의 라이벌 격이었던 롯데로 자리를 옮긴 인물도 있습니다.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 사업부 대표이사(59)가 그 주인공입니다. 정 대표이사는 1987년 신세계그룹에 입사해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20년 이상 해외사업을 담당했습니다. 롯데백화점에 자리를 잡고는 고급화에 특히 힘썼습니다. 정 대표이사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재직하던 시절 아르마니, 몽클레어, 메종마르지엘라, 아크네 등 유명 패션 브랜드를 국내에 유치해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

◇ 유통업계, 신세계 성장 이끈 인재들의 경험 높이 사

유통업계에서 신세계그룹 출신 인사들의 약진을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성장을 이끌어 본 경험을 높이 샀다는 점입니다. 신세계는 1963년 삼성그룹에 인수된 동화백화점을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성장했습니다. 유통업에서는 롯데라는 큰 산을 두고 경쟁하면서 규모와 내실을 함께 키우는 것을 경험한 인물들입니다. 예를 들어 허인철 부회장은 1997년 신세계가 삼성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던 1997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기고 기업을 성장시킨 공신 중 공신으로 꼽힙니다.

신세계의 품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 잡은 다른 인물들도 시대는 다르지만 다 비슷한 경험을 한 인물들입니다. 2011년 이마트가 신세계에서 인적 분할되면서 성장을 가속화하던 시기를 경험한 인물도 있고, 백화점을 고급화시키는 전략을 세우고 펼친 인물도 있습니다. 최근 신세계 출신 인사들의 약진은 신세계가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가져오려는 유통업계의 열망이 투영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엔 어디서 경력을 쌓아온 인물들이 득세할지 주목됩니다. 쿠팡일까요? 아니면 CJ올리브영일까요? 시대 변화에 따른 유통업의 흥망성쇠를 잘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