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체험목장에서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어린이들. /김은영 기자

저출산에 따른 지역 소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 속 지역과 상생하는 유통업체들도 있다. 조선비즈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종 유통업체들의 현장 및 지자체 현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이게 뭔지 알아요?” “오이요!” “호박이요!” “이건 고창에서 자란 아기 멜론이에요. 너무 작아 팔 수 없는 것들을 농장이 구매해 장아찌로 만듭니다. 한번 만져볼래요?”

지난 2일 오후 전북 고창군 상하면에 위치한 상하농원 내 발효공방. 낮 최고기온 35도를 가리키는 불볕더위에 공방 투어에 나선 어린이들은 가이드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멜론을 만져 보고, 지푸라기로 엮은 작은 메줏덩어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 고창군 3만 평 대지에 조성된 ‘리틀 포레스트’ 체험장

서울에서 약 300km, 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상하농원은 전북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9만9173㎡(약 3만 평) 대지에 조성된 농촌 테마파크다. 유제품 기업 매일유업(267980)이 농림축산식품부, 고창군과 함께 조성한 곳으로 2016년 4월 개장했다.

사업 초기 정부와 고창군이 각각 50억원을 공동 출자하고 매일유업이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매일유업이 170억원을 추가 투자해 현재의 상하농원이 만들어졌다.

‘짓다, 놀다, 먹다’를 슬로건으로 조성된 상하농원은 먹거리의 생산-가공-판매-유통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농촌 마을’을 구현했다. 농장과 공방,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파머스 마켓, 스마트팜, 레스토랑, 카페, 동물농장, 스파, 수영장, 숙박시설 등을 운영한다.

그래픽=손민균

이날 어린이들을 만난 공방도 실제 제품이 만들어지는 장소다. 상하농원에서는 소시지, 빵, 과일, 간장 젓갈류 등의 먹거리를 직접 만드는데, 모든 공방을 공개해 누구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것부터 소시지, 치즈, 아이스크림 등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그런 덕에 상하농원에는 유난히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소시지 체험 교실에서는 유모차를 탄 어린이와 부모, 할머니와 함께한 초등학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수업이었지만, 다진 돼지고기가 양장(양의 창자)에 들어가 탱글탱글한 소시지로 완성되자 어른들이 더 즐거워했다. 41개 객실을 보유한 호텔 파머스빌리지는 이날 모든 방이 동났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저출산 시대에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농촌 체험 활동을 제공하고, 가족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지역 관광명소로도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라고 했다.

◇ 180명 고용... 지역 농축산물 75억어치 매입·판매

상하농원이 위치한 고창군은 정부가 지정한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한 곳이다. 올해 7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고창군 인구수는 5만1241명으로, 지난 10년간 14%가량 줄었다.

지난 2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전경. /김은영 기자

이런 가운데 상하농원은 연간 20만~30만 명, 누적 14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지역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라마 ‘도깨비’,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등장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방문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모종을 심는 인증 사진을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상하농원은 ‘한국형 6차산업 사업 모델’로도 주목받는다. 6차산업이란 1차산업인 농업, 2차산업인 제조, 3차사업인 유통·서비스·관광을 아우르는 융복합 산업을 의미한다.

상하농원은 직접고용(150여 명)과 지역 간접고용(30여 명)을 포함해 총 180명을 고용하고 있다. 또 도내 100여 개 농가·조합·단체와 협력해 과일, 돈육 등 연간 75억원 규모의 지역 농·축산물을 매입하고, 이를 활용해 햄, 소시지, 김치, 잼 등을 생산·판매한다. 지난해 상하농원의 매출액은 340억원이었다.

정부도 상하농원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체험형 농촌 테마공원으로 연간 30만 명이 다녀가는 고창 상하농원처럼 기업이 투자하고 농민과 지역이 상생하는 성공 사례를 확산시키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내 체험 교실에서 소시지 만들기 체험을 하는 방문객들. /김은영 기자

◇ 농업-제조-유통 아우르는 ‘6차 산업’ 모델로 주목

개장한 지 8년이 됐지만, 상하농원은 아직 미완성 상태다. 기자가 찾은 날도 숲속 산책길을 조성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 하반기에는 고창군과 협력해 일과 휴식을 함께하는 워케이션(Worcation)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김정완 매일홀딩스 회장이 수시로 농원을 찾아 정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민간기업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농촌에 민간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농원에 인접한 국유지인 강선달 저수지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지역에서 사업하는 법인이 농업경영이나 주말 체험 영농을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김용진 고창군청 농촌활력과 팀장은 “이 정도 규모의 농촌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상하농원이 유일하다”면서 “개장 준비부터 매일유업과 함께 방법을 찾아온 만큼, 앞으로도 상하농원이 잘되도록 지원하겠다. 상하농원이 살아야 고창도 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