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소비자들은 흔히 칠레산(産) 와인을 ‘가격 대비 만족도가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와인에 조금 못 미치지만, 대신 저렴한 가격에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는 뜻이다. 칠레에서 와인 업계가 처음 태동한 것이 19세기 후반이었는데, 130년이 지나도록 이런 인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2004년 이를 송두리째 뒤엎는 사건이 일어났다. 와인 업계에서는 종종 산지와 생산자 같은 와인에 대한 정보를 가리고 순수하게 와인 맛과 향, 질감으로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 시음회를 연다.

2004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테이스팅’에서 칠레 와인 ‘비녜도 채드윅’은 샤토 마고, 샤토 페트뤼스, 샤토 라피트 로칠드 같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와인을 꺾고 1등을 차지했다. 쉽게 말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었더니 하극상이 벌어진 셈이다.

이 사건은 1976년 역사적인 ‘파리의 심판’에 이어 최근 100년 사이 현대 와인 역사에 획을 긋는 놀라운 사건으로 회자된다. 파리의 심판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레드와 화이트 부문에서 모두 프랑스 와인을 이긴 사건을 말한다.

파리의 심판이 미국 와인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된 것처럼, 베를린 테이스팅은 칠레산 와인 역시 최고급 와인과 대적할 만하다는 신호탄을 쐈다.

1976년 당시 파리의 심판을 진행한 영국 유명 와인컨설턴트 스티븐 스퍼리어는 “베를린 테이스팅을 계기로 칠레 와인은 새 역사를 쓰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손민균

당시 이 시음회를 주최하고, 1등 와인을 생산한 곳이 바로 칠레 와이너리 ‘에라주리즈(Errazuriz)’다. 에라주리즈는 1870년 창업자 돈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가 칠레 중북부 아콘카구아(Aconcagua) 계곡에서 포도밭을 일구며 시작해, 현재까지 5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는 유서 깊은 와인 명가(名家)다.

에라주리즈를 이끄는 5대(代)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은 2004년 베를린 테이스팅을 기점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일본 도쿄, 홍콩, 우리나라 서울 같은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면서 비슷한 행사를 열었다.

‘칠레와인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가설(假說)을 정설(定說)로 증명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나쁜 결과는 좋은 결과를 덮어버리기 쉽다. 첫 시음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쳐도, 이후 한 번이라도 점수를 깎아먹게 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채드윅 회장은 제품을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만이 칠레 와인 우수성을 입증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순위가 떨어지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서울에서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 열렸던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가 대표적이다.

2008년 첫 서울 테이스팅에서는 1위와 2위를 프랑스 유명 와인 샤토 마고와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 내줬다.

2013년은 달랐다. 1위부터 6위까지 3위 한 자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를 에라주리즈 와인이 차지했다.

그래픽=손민균

비녜도 채드윅은 채드윅 회장이 아버지 돈 알폰소 채드윅(Don Alfonso Chadwick)에게 바치는 상징적인 와인이다.

채드윅 회장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양조학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1992년 아버지가 폴로(Polo) 경기장으로 사용하던 땅에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 품종 묘목을 심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1993년 포도나무를 심은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채드윅 회장은 1999년 이 땅에서 자란 포도로 첫 와인을 만들면서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로 비녜도 채드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와인은 칠레 와인 양조 기술의 정점에 오른 에라주리즈가 선보이는 가장 좋은 와인답게 극히 제한된 양만 생산한다. 축구장 15개 크기 15헥타르에서 고작 1만병 정도를 빚는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 유명 와이너리들이 매년 12만~20만병을 생산하는 데 비하면 5% 남짓에 그친다.

채드윅 회장과 에라주리즈 성공에 자극받은 칠레 전역의 와인 메이커들은 뒤따라 도전을 시도했다.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외국 품종을 가져다 심기도 하고, 오랫동안 잊혔던 토양을 새로 일구기도 했다. 건조한 칠레 기후에 맞춰 물을 적게 사용하는 현대적 양조 방식도 도입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000년대 초반 와인업계 변방에 서있던 칠레는 이제 신세계 와인을 이끄는 중심 국가로 재도약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있는 선구자 덕분에 역사는 진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