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와 같은 약간의 새콤함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군더더기가 없이 맛이 깔끔하고, 단맛이 적어 마시고 난 뒤에 잡맛이 남지 않는다. 단맛을 좋아하는 대중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반주로 음식과 함께 한병을 금방 비울 수 있는 마성의 매력을 갖추었다.”(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

지난 7월 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주류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인 신상 술 ‘담 진주(탁주)’에 대한 전통주 전문가의 평이다. 함께 선보인 약주 ‘담 골드’에 대해서도 이지민 대표는 “드라이하면서도 깔끔한 산미, 완벽한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약주”라며 “단맛이 음식의 맛을 압도해 그동안 한국술을 쓰는 걸 주저했던 업장 대표나 파인다이닝 세프들에게 권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람회 당시 맛을 본 일반인들도 “행사장에서 맛을 본 여러 술과는 확연히 다르다” “달지 않아 여러 잔 마셔도 좋겠다”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

약주 ‘담 골드’를 새꼬시(연한 뼈와 살을 통째로 썰어 만든 생선회)와 먹어봤다. 이전에 먹어봤던 여러 약주에 비해 단맛이 확연히 적었다. 그렇다고 산미가 강한 것도 아니었다. 알코올 도수가 12도로 약간 낮은 편이라 그런지, 술이 술술 넘어가는게 아닌가. 안주인 새꼬시도 덩달아 입 안으로 자꾸 들어갔다. 딱히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술이라기 보다는 음식과 아예 구분이 안되는 술, 음식과 하나가 되는 술이란 느낌이 들었다.

담 진주, 담 골드를 출시한 신생 양조장 내올담의 안담윤 대표는 ‘달지 않은 반주용 술’ 개발에 진심이다. 밥상에서 음식과 함께 식사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는 술이 좋은 술, 맛있는 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달지 않는 술’을 만든다. 그가 만든 술의 특성은 ‘SIMPLE & DRY(단순하면서 달지 않은)’이다.

내올담 안담윤 대표가 지난 7월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주류박람회에서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드라이(달지 않은)한 술은 글로벌 트렌드입니다. 우리가 둘이서 750ml 와인 한병은 쉽게 마셔도, 약이 절반밖에 안되는 전통주는 한병을 비우기 어려운 것은 우리 술이 너무 달기 때문입니다. 단 술은 한잔을 마시기에는 좋지만, 음식과 함께 여러 잔을 마시기는 부담스럽습니다.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술, 반주로 마시는 술은 우선 달지 않아야 합니다.”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한다’는 뜻을 지닌 양조장 내올담 안담윤 대표는 원래 궁중음식을 공부하다가 전통주에 귀의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삼해약주 보유자인 권희자 선생에게 사사했다. 2010년 10월, 전국단위 술 빚기 대회인 ‘가양주주인선발대회’ 대상을 수상한 ‘재야의 고수’다. 2012년부터 전통주 양조 교육기관인 ‘담 발효곳간’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최근에 덜컥 자기 술을 내놓았다.

“술 출시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거의 10년전부터 꾸준히 술을 빚어 주변 분들과 나눠 마셔왔습니다. 최근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쌀의 전처리 과정(밑술과 덧술을 고두밥, 죽, 범벅 등으로 했을 경우)에 따른 총 64종의 발효주를 빚게 돼 이중 소비자 반응이 좋은 술, 대량생산이 용이한 술을 골라 탁주, 약주 하나씩 상품화하기로 했고, 소주도 추가해 총 3종의 술을 세상에 내놓게 됐습니다.”

내올담 안담윤 대표가 최근 출시한 술들. 왼쪽부터 담 진주(탁주), 담 골드(약주), 담 다이아몬드(소주). 음식과 잘 어울리도록 최대한 단 맛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박순욱기자

안 대표가 만든 술은 모두 보석이다. 탁주는 담 진주, 약주는 담 골드, 소주는 담 다이아몬드란 이름을 붙였다. 술 3종을 출시하면서 콘셉트를 ‘보석’으로 잡은 취지가 먼저 궁금했다.

“한마디로 우리 술이 보석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콘셉트를 보석으로 잡았다. 전통주의 대명사인 막걸리가 가장 값싼 술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진주(탁주), 골드(약주), 다이아몬드(소주)로 정한 것은 색상과도 관련이 있다. 탁주는 진주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약주는 매혹적인 황금색 컬러, 소주는 맑고 투명한 다이아몬드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다.”

그가 만든 술은 고문헌의 히스토리는 물론, 가족 스토리도 담고 있다. 탁주 ‘담 진주’의 제법인 ‘백하주’는 문중 종부인 시어머니가 제사, 집안 대소사 때마다 빚던 술이다. 약주 ‘담 골드’는 어머니의 고향인 경북지방 술인 ‘황금주’를 기본으로 만들었다. 소주 ‘담 다이아몬드’는 아버지 고향인 평양의 명주인 ‘벽향주’를 재현한 술이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내올담의 탁주는 5주간의 발효와 4주간의 숙성을 거치며, 약주는 5주간의 발효와 10주간의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약주는 탁주와 발효기간은 같으나, 숙성기간은 두 배다. 약주 ‘담 골드’는 내올담의 주력 상품이다. 소주는 증류 후 1년 이상 숙성을 거친 뒤 병입했다.

탁주, 약주, 소주 다 발효주 제법이 다른 만큼, 별도로 다 따로 발효주를 담근다. 탁주를 담아서, 맑은 술은 약주를 만들고 맑은 술을 증류해 소주를 만드는게 아니다. 탁주는 탁주용 술을 따로 담고, 약주는 처음부터 약주용 술을 담는다. 소주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반적인 양조장 제조 스타일과는 다르다. 막걸리(탁주)를 빚어, 이를 토대로 약주도 만들고, 증류해 소주도 만드는게 가장 일반적이고 또,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내올담은 우직하게도 탁주, 약주, 소주의 특성을 고려한 제법따라 발효주를 별도로 빚는다.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량생산 시스템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의욕이 충만한 신생 양조장에서나 가능한 시도다.

-탁주 ‘담 진주’는 백하주 제법을 바탕으로 했다고 했다. 백하주는 어떻게 만드는 술인가?

“담백한 맛을 내는 술이다. 밑술과 1차 덧술은 범벅으로, 2차 덧술은 고두밥으로 한다. 술 빛깔이 ‘흰 노을’ 또는 ‘흰 아지랑이’와 같다 해서 백하주로 부르는 이 술은 고려시대부터 빚어진 것으로 전한다.”

내올담 안담윤 대표가 발효 중인 약주 향을 맡아보고 있다. 약주 담 골드는 5주간의 발효와 10주간의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박순욱 기자

-담 진주가 추구하는 향과 맛은?

“원래 백하주는 멥쌀로만 빚는 걸로 돼 있는데, 나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 찹쌀을 추가했다. 알코올 도수는 9도. 좀 드라이한 편이다. 은은한 사과향과 배향, 시트러스향이 잘 어우러진다고 할 수 있다.”

-약주에 쓰인 황금주 제법은?

“술 빛깔이 ‘황금처럼 밝은 노란색을 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밑술은 범벅으로 하는데, 물 양은 아주 작게 한다. 발효제인 누룩을 매달아 쓰는 등 누룩 사용법이 특이하다. 밑술 때 효모활동을 약간 억제해, 발효가 천천히 진행하도록 한 술이다. 알코올 발효가 더디게 진행될수록 술맛이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하면, 술 색깔도 황금색보다 더 진해지지 않는다. 쌀은 순멥쌀만 사용하는데, 잔당이 있어 단맛도 살짝 있다.”

-소주에 활용된 벽향주는?

“벽향주로는 다양한 술빚기가 가능하다. 약주로 좋은 벽향주도 있고, 소주로 좋은 벽향주도 있는데, 다 담아봤다. 재료는 멥쌀. 밑술과 1차 덧술은 죽, 2차 덧술은 고두밥으로 한다. 증류하면, 매콤한 맛과 향이 풍성하다. 처음부터 넣는 물 양이 많아 발효 끝나면 도수는 10도 정도밖에 안된다. 1차 증류하면 알코올 도수가 30도 정도다. 이를 다시 2차증류해 45도까지 올린다. 옹기 숙성 후 최종 병입 술 알코올 도수는 40도다. 증류 중간에 나오는 본류만 사용하고, 초류와 후류는 그다음 증류할 때 넣는다. 발효주를 기준으로 하면 실제 사용하는 본류는 20%밖에 안된다.”

-담 진주는 멥쌀과 찹쌀을 같이 사용했으나 담 골드는 멥쌀로만 빚은 까닭은?

“드라이함을 지키기 위해서다. 멥쌀로 빚은 술은 단맛이 무겁지 않아, 술 한모금 마시고 침을 한번 삼키면 입안이 금방 다시 깔끔해져 다음 음식이나 술 맛을 기대하게 한다.”

-달지 않은 술을 표명했는데.

“’단 술이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다양한 술 스펙트럼 중에 드라이한 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달지 않은 술을 만들었다. 나 스스로도 너무 달아서 잘 못먹는 술들이 적지 않다. 저녁 식사 때 곧잘 반주로 술을 마시는데, 우리 술은 한잔 이상을 마시기 어렵다, 너무 달아서다. 단 술은 음식 먹는데, 다소 부담스럽다. ‘와인은 750ml 한병을 따면 둘이서도 다 마시는데, 우리 술은 500ml 한병을 둘이서 왜 다 못먹을까?’ 이게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우리 술이 그만큼 음식과 맞추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외국 경우도 단 술은 식사 후에 디저트로 한잔 정도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우리 술도 ‘심플 & 드라이’해서 음식과도 잘 어우러지면 술들이 많았으면 한다.

식사 중에 음식과 함께 계속 마실 수 있는 술을 최고로 친다. 술 자체로서 완성도보다는 음식과의 페어링(궁합) 측면에서 음식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술을 더 선호한다. 음식을 더 돋보이게 하는 술, 또 달지 않아서 한잔이 아니라 여러 잔을 음식과 함께 마실 수 있는 술이 좋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중에는 드라이한 술보다는 단맛 나는 술이 월등히 많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전통주 소비층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 전통주는 남자 어르신들이 마시는 술이었다면, 요즘은 젊은 여성들이 술 선택권을 가진 주요 소비자로 변화된 것 같다. 술 초보자들이 마시기에는 아무래도 단 술이 무난할 것이다.

양조장 내올담은 '전통(내려오는 것)을 올바르게 담는다'는 뜻이다. /박순욱 기자

또, 단 술이 잘 팔리니까, 상품으로 나와 있는 술들 중에 단 술이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단 술을 흔하게 마시다보니 우리 입맛도 그렇게 길들여진 측면도 있다.”

-음식에 잘 어울리는 술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달라?

“겨울철 과메기를 먹을 때는 감으로 만든 와인(논산의 추시)을 꼭 같이 먹는다. 과메기의 비리고 기름진 맛을 와인의 탄닌(떫은맛)이 잡아줘서 기름진 맛에 질리지 않고 과메기와 와인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와인 자체는 다소 떫은 맛이 강해 음용성이 떨어지는데, 어울리는 음식을 만나면, 여러 잔을 즐길 수 있다.

또, 같은 음식이라도 분위기가 다르면 선택하는 술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음식이 메인일 때와 술이 메인일 때의 선택은 또 당연히 다르다. 우리 전통 음주문화는 반주문화다. 밥 위주의 식사에서 반찬에 따라 술 선택이 달라지는데, 다양한 음식의 맛과 함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술이 좋은 술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은?

“탁주 진주를 좀 더 도수 높은 걸로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주문생산 방식으로 소량 만들 작정이다. 약주도 현행 12도에서 14도로 약간 더 올린 별도 제품을 내놓을 생각도 갖고 있다. 탁주와 약주는 전체적으로 좀 더 드라이한 제품을 별도로 내놓을 예정이다. 소주는 숙성 기간을 달리한 다양한 술을 준비 중에 있다. 1년 숙성, 3년 숙성, 5년 숙성 제품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