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종의 전통술을 취급하고 있는 국내 최대 전통주전문점인 백곰막걸리에서 작년 한해 가장 많이 팔린 술은 ‘복순도가 손막걸리(울산)’였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우리나라 스파클링 막걸리의 원조다. 약주 부문에서는 ‘명인 오메기맑은술(제주)’이 전년도에 이어 작년에도 가장 많이 팔렸다. 증류주 부문에서는 ‘곰이 사랑한 꿀술 16도(용인)’가 1위를 차지했다. 경기도 용인의 농업회사법인 술샘이 만든 술로, ‘꿀샘 16′이 원래 이름이다. 주정에 설탕과 꿀을 첨가한 리큐르다.
코로나가 일년 내내 극성을 부린 2021년은 전통주 업계에서는 ‘기회의 한해’였다. 2020년보다는 못하지만, 전통주 전문점이 꾸준히 늘어났으며, 특히 일반 식당에서 전통주를 취급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가 작년 2021년이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전통주를 마시려면, 양조장에서 개설한 온라인 시장에서 구매하거나, 전통주 전문주점을 가야했는데, 작년부터는 고깃집, 냉면집을 비롯해 웬만한 식당에서는 전통주를 다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전통주를 접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전통주를 주로 취급하는 바틀샵이 크게 늘어난 것도 작년에 도드라졌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코로나 영향으로 혼술, 홈술 음주문화가 일반화됨에 따라, 개성 있는 전통주를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온라인 판매, 도매상, 전통주점, 바틀샵, 일반식당 등 전통주 양조장들의 유통채널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막걸리>
1위를 차지한 울산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탄산이 들어간 스파클링 막걸리다. 그동안 1위를 고수했던 이화백주(양산)는 첨가물 문제로 백곰막걸리 주류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2위는 서울 나루 생 막걸리 6도, 3위는 공주 왕알밤 막걸리, 4위는 김포 팔팔막걸리 6도, 5위는 남양주 그래그날 막걸리 5.5도가 각기 차지했다.
막걸리 부문의 중요한 변화는 ‘대중적인 프리미엄 막걸리’가 대세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나루막걸리, 팔팔막걸리, 그래그날 막걸리 등 판매순위 상위에 랭크된 막걸리들의 공통점은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넣지 않으면서도 음용성을 감안해, 알코올 도수는 6도(그래그날 막걸리는 5.5도) 안팎으로 낮추었다는 점이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에게 작년 막걸리 시장의 새 트렌드를 물었다.
-막걸리 시장의 새 트렌드는?
“2021년 막걸리 시장은 나루 생막걸리 스타일(2019년 출시, 무감미료, 저도수)의 막걸리들이 대세로 등극한 해라고 볼 수 있다. 프리미엄을 추구하되, 음용성이 좋은(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술들이 인기를 끌었다. 도수는 6도 수준. 이전에는 풍정사계류의 무감미료, 고알코올 도수의 프리미엄 막걸리들이 인기를 모았던 것과 대조를 이루었다.
나루 생막걸리와 스타일이 유사한 팔팔막걸리는 작년 출시 첫해부터 4위에 올랐다. 5위인 그래그날 막걸리도 같은 스타일. 6위에 오른 포천 담은 1932 역시 알코올 도수 6도대의 막걸리다.”
-이른바 준프리미엄 막걸리가 대세를 차지했다는 건가?
“도수가 높지 않으면서도 무감미료, 프리미엄, 준프리미엄을 추구하는 막걸리들이 더 도드라진 것이 2021년 한해였다. 2019년에 나온 나루 막걸리를 시작으로, 최근의 팔팔막걸리까지 심형석 소장(배혜정도가 연구소장 출신)이 컨설팅한 술들이 대부분 이런 술들이다.
경향성을 보면, 우선 알코올 도수는 6도 수준이다. 또, 누룩은 전통누룩만 고집하지 않고 개량누룩도 적극 사용한다. 다시말해, 전통 양조방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가장 큰 특징은 음용성이 좋다는 것.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을 만든다.
비용이 많이 드는 유리병 패키지를 쓰지 않는 것도 요즘 준프리미엄 막걸리들의 공통된 추세다. 업장에서도 1만원 언저리에서 마실 수 있도록 가격을 최대한 낮춘다.”
-김포 팔팔막걸리는 출시 첫해에 4위에 랭크?
“술 스타일은 이전에 나온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와 비슷하다. 나루처럼 심형석 소장에게서 컨설팅 받은 걸로 안다. 재료는 프리미엄을 추구한다. 한강 나루는 경복궁쌀, 팔팔은 김포금쌀 특등미를 썼다. 가격도 비슷. 팔팔막걸리가 다소 더 진한 느낌, 적당한 잔당도 있어 음용성은 높다. 기존의 도수 높은 프리미엄 막걸리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 신프리미엄 막걸리라고 불러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약주>
제주 명인 오메기맑은술이 전년도에 이어 작년에도 1위를 지켰다. 오메기는 좁쌀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 좁쌀을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윗부분의 맑은 술만을 떠내 숙성시킨 술이 오메기맑은술이다. 제주 술익는집 양조장은 4대째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일체의 첨가물 없이 술을 빚고 있다. 농림축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으로 지정받은 김희숙 명인이 양조장 대표다. 이 술의 정체성은 신맛에 있지만,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적절하다는 평이 많다
2위는 안동 일엽편주 약주가 차지했다. 조선시대, 사간원에서 일하다가 연산군의 노염을 사서, 안동으로 유배당한 이현보 선생을 모신 농암종택의 종부가 만든 가양주다. 3위는 남원 황진이주, 4위는 장성 장성만리, 5위는 논산 우렁이쌀 청주가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일엽편주 약주의 매력은?
“명분(농암종택 종부가 만드는 가양주)과 디자인 패키징, 두가지를 동시에 잡은 제품으로, 작년에 가장 핫한 약주가 아닐까 한다. 전통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는게 쉽지 않다. 술 자체가 족보가 분명한 가양주(스토리텔링)이고, 병 패키지가 너무 예쁘다고들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가끔 판매하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맛도 대중성 확보했다. 전통누룩을 사용했지만 누룩취, 누룩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맛이 굉장히 깔끔하다.
제조방법은 전통성을 고수했다고 볼 수 있다. 쌀, 누룩, 물 외 원료는 없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제조법대로 술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맛이 깔끔해 전통주 초보자들도 좋아한다. 작년에 가장 대박을 친 약주라고 본다. 온라인 전통주 시장에서 풍정사계 춘과 함께 가장 귀한 술로 대접받는다. 작년에 6위를 차지한 풍정사계 춘은 작년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 두 술은 희소성을 인정받고 있다.”
-4위인 장성만리는 어떤 술인가?
“전남 장성의 약주다. 술 기법은 연화주로, 연꽃을 넣어 발효시킨다. 향이 좋다. 누룩향도 있고, 찹쌀에서 오는 잔당 느낌도 있다. 끝에 떨어지는 향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단 술은 싫어하는데, 유일하게 이 술만 단 술 중에 좋아한다. 쌀, 누룩, 물이 주재료, 연꽃은 부재료다.”
<증류주>
경기도 용인의 농업회사법인 술샘 양조장의 꿀술 16도가 1위를 차지했다. 증류주 스타일의 리큐르로서, 주정이 베이스다. 천연꿀 2.52%를 첨가했다. 2위는 작년에 1위를 차지했던 서울의 밤 25도, 3위는 충주 토끼소주 화이트 23도, 4위는 서울 삼해소주 45도, 5위는 전주 이강주 25도가 각기 차지했다.
-1위인 꿀술 16도는 어떤 술인가?
“꿀술 16도는 증류주 입문용 술로 반응이 좋다. 젊은이들은 낮은 알코올 도수인 16도이지만, 언더락(얼음 타서)으로도 잘 마신다. 꼭 도수가 높다고 언더락으로 마시지는 않는다. 꿀 외에 설탕도 들어간다. 아마 설탕이 훨씬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향은 꿀로 내고 선호하는 단맛은 설탕으로 내지 않았을까 여긴다. 감미료는 들어가지 않지만 구연산을 넣어 술의 밸런스(맛의 균형)를 잡았다. 구연산은 감미료는 아니고, 산미(신맛)료라고 볼 수 있다.”
-4위를 차지한 삼해소주 45도를 제외하고는 5위까지가 비교적 도수가 낮은 편이다.
“증류주 중에서는 알코올 도수 25도가 가장 인기다. 서울의 밤, 전주 이강주, 화요, 추사백 등 25도 술이 많이 팔린다. 40도 이상 가는 술들은 부담스러워한다. 그럼에도 삼해소주는 45도의 고도주임에도, 많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여전하다.”
<총평>
2021년 작년은 ‘전통주 대중화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통주 취급 업소가 전통주 전문점을 넘어서, 바틀샵, 고깃집, 냉면집 등 일반 식당으로까지 크게 확대됐다. 그 추세가 도드라진 것이 작년부터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까지 전통주를 주류 리스트에 올리기도 한다고 한다.
-2020년 전통주점들은 영업시간 제약으로 매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전통주 시장 전체는 커졌다. 2021년도 마찬가지인가?
“코로나가 2020년 1월에 시작됐다. 전통주 전문점은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늘고 있다. 전통주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요즘에는 신규 업장을 다 찾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생겨나고 있다. 다만, 2020년보다는 증가율이 완만하고 코로나 영향을 받아 업종을 전환하는 주점도 가끔씩 생겨나고 있다.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전통주점 진출이 확산되는 추세가 뚜렷한 것도 작년이다.
전통주의 대중화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것이 2021년 전통주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 기점이 작년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전통주 전문점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전통주를 취급하는 식당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전통주를 팔지 않던 한식전문점을 비롯해 외식업장에서 전통주를 취급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냉면집, 고깃집에서도 요즘엔 전통주 판매가 흔하다. 이런 곳들은 소비자들이 전통주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다. 냉면 먹으러 가야지, 고기 먹으러 가야지 하다가 전통주를 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류 리스트에도 전통주가 등장하기도 한다. 전통주 발전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전통주 전문점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일반 음식점에서 전통주를 취급하는 경우가 전통주 시장 외연 확대를 위해서는 훨씬 바람직하다.
맛있는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도 전통주를 마실 수 있다든지, 100년 노포에서 전통주를 취급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 것이 좋다. 떡갈비로 유명한 동신명가도 최근 전통주를 새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양조장 입장에서도 전통주점만 상대하는 것보다 일반 식당으로 비즈니스를 넓히는 것이 확장성 측면에서 훨씬 낫다.
가령, 10만개의 전통주점이 생겨, 전통주를 취급하는 것보다는 60만개의 외식업장 중에서 10만군데가 전통주를 파는 것이 훨씬 양조장에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 방향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한해가 작년이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전통주 전문점이 전통주 시장을 주도해 나갔다면 2021년에는 일반 외식업장의 전통주 취급이 크게 일반화된 한해였다. 또,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비중이 커짐에 따라 전통주점의 위상, 비중은 다소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전통주 전문점이 전통주를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시설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전통주점 말고는, 양조장을 찾아가야했다. 그러나, 이제는 양조장 입장에서도 온라인 판매 확대로 판로가 전통주점 위주에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작년에 전통주 바틀샵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바틀샵 발전 원년도 작년이었다. 바틀샵은 외식업장보다는 가격이 다소 저렴한 장점이 있다. 이러다 보니, 양조장으로선 유통채널이 바틀샵, 온라인, 도매상, 전통주점, 일반 식당까지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전통주점에서 팔아주는 술이 양조장 매출의 거의 전부인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통주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물론, 지금도 전통주점이 전통주를 알리는 안테냐샵 역할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