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고기, 생선, 야채를 직접 사다가 손질해 갖은 조미료와 함께 끓이고 볶는 것만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근사한 한끼가 되는 가정간편식(HMR)이 대중화 된 덕분이다. 백화점, 마트, 편의점,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이 경쟁적으로 HMR 상설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이렇게 늘어나는 수요 때문이다.
프레시지, 마이셰프와 함께 국내 HMR 시장을 70% 점유한 스타트업 테이스티나인은 창립 이래 가장 도전적인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동남아, 유럽, 미국 등 30개국에 테이스티나인식 레디밀(밀키트의 한 종류로 재료가 모두 손질돼 있어 조리만 하면 되는 간편식)을 전파한다. 대기업인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이 든든한 조력자다.
다른 기업들이 밀키트 수출처를 어떻게 뚫어야 할 지 고민할 때 홍주열 테이스티나인 최고경영자(CEO)는 ‘현지 직접 진출’이란 방침을 세웠다. 위험부담이 크지만 물류비·인건비를 줄이면서 현지 소비자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어 시장을 장악하면 오히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투자 유치를 다니며 설파했던 이런 전략에 신성장 동력을 찾던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주목했고 업무협약(MOU)으로 이어졌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테이스티나인 본사에서 만난 홍 대표와 이호준 최고경영전략본부장(CBO)은 내년도 사업계획 구상에 한창이었다. 테이스티나인의 매출은 2019년 78억원에서 작년 233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올해 7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작년엔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테이스티나인은 현재 투자 유치를 진행중인데, 목표액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을 내겠다며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은 대부분 테이스티나인의 고객사다. 2주 내 제품 생산을 안정적으로 해내는 손꼽히는 회사라서다. 비결은 소규모 생산공장인 인큐베이팅 센터다. 테이스티나인은 소비 트렌드에 맞게 레디밀을 직접 기획한 뒤, 인큐베이팅 센터에서 소량 제조해 유통채널에서 반응을 확인한 다음 대량 생산 여부를 결정한다. 대량 생산은 외부 OEM(위탁 생산) 업체에 맡긴다.
인큐베이팅 센터는 현재 광교·성남·인천·속초에 있는데 내년까지 전국에 20개를, 전세계에 100개를 만들 계획이다. 홍 대표는 “생산공장이 지방에 있으면 본사와 소통 문제도 있고 물류비도 많이 든다”며 “인큐베이팅 센터는 400~2000평 규모로 웬만한 제조공장 못지 않은 규모인데다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주요 유통사에 제품을 바로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 동향을 살피면서 생산량을 바로 조절할 수 있어 효율적인 재고 관리도 가능하다.
테이스티나인의 첫 해외 진출국은 인도네시아다. 유통업계에선 험지로 꼽힌다. 무슬림 비중이 높아 할랄(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돼지고기가 금지된다) 음식이 보편적이고 섬이 많아 물류체계가 복잡하다. 빈부격차가 커 평균 1식 단가도 낮은 편이다.
이 본부장은 “인구가 2억7000만명이고 평균 연령이 29세로 젊은데다 K푸드에 대한 관심도 많다”며 “다양한 변수가 있는 나라에 통합 테스트를 먼저 해보자는 개념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최대 식품회사인 인도푸드와 협업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1971년 이후 40년 가까이 인도네시아 라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한 인도미를 생산하는 회사다.
많은 식품 제조사가 쿠팡 같은 대형 이커머스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자사몰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테이스티나인은 D2C(소비자 직접 판매·Direct to consumer)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10월 서울 논현동에 문을 연 델리익스프레스 등 현재 40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다. 이 공간을 편의점과 백화점 푸드코트를 합한 신개념 편의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런 곳을 내년 200개까지 늘리고 가맹사업도 추진한다.
홍 대표는 테이스티나인을 한국의 네슬레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단순 식품 제조사를 넘어 브랜드력을 가진 혁신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투자유치 과정에서 ‘전통적인 식품 제조사와의 차별점이 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회사의 제품 기획력과 빠른 생산이 가능한 사업모델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홍 대표는 해외 진출을 통해 성과를 내고, 투자 받은 돈으로 인수합병(M&A)을 해 몸집을 불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국내 시장에서 식품 기업의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 진출로 성과를 내 우리의 사업구조가 세계화에 최적화 돼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