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구두 마놀로 블라닉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다. 가늘고 긴 굽의 하이힐이 상징인 이 브랜드는 한때 여성들의 ‘로망’으로 사랑받았지만, 편하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트렌드의 부상으로 국내 신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마놀로 블라닉은 작년 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의 영업을 중단했다. 2005년부터 마놀로 블라닉을 국내에 수입 전개를 해 온 커먼웰스가 해당 사업을 종료하면서다.
현재 일부 백화점 편집매장과 면세점을 운영 중이나 종료 수순을 밟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마놀로 블라닉은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이 1950년 영국에서 창업한 구두 브랜드다.
9cm의 가늘고 긴 스틸레토 힐이 특징으로, 2000년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사랑하는 구두로 등장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표 제품은 화려한 큐빅이 장식된 한기시 펌프스로, 가격이 200만원 안팎이다.
국내에는 2005년에 공식 수입돼 롯데백화점 본점 애비뉴엘,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 신세계 본점과 강남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등에서 단독 매장을 운영했다.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부인 한지희 씨 등이 즐겨 신어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편한 신발의 유행이 지속되며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이 줄자 입지가 좁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마놀로 블라닉, 지미추 등이 여전히 웨딩 슈즈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예전보다 수요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매장 운영에는 한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업 트렌드리서치가 주관하는 ‘한국패션소비시장 빅데이터 2023′ 연감에 따르면 국내 신발 시장 규모는 지난해 6% 신장한 7조5948억원으로 추정된다.
트렌드리서치는 “명품 가죽 운동화 및 스포츠 전문기업이 출시한 패션 운동화를 중심으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 소비 증가가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신발 시장은 일상화로 자리 잡은 운동화를 비롯해 크록스, 어그, 버켄스탁 등 단순하고 편한 신발이 대세다.
병원이나 식당 근무자들이 신던 고무 신발 크록스는 2018년 11억달러(약 1조4664억원)였던 매출이 지난해 약 36억달러(약 4조7984억원)로 늘었다. 국내에서 크록스를 수입·판매하는 크록스코리아의 2022년 매출은 1816억원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양털 부츠 어그도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국내에 어그를 수입·판매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7~12월) 어그 매출은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겨욜용 부츠뿐 아니라 여름 레인부츠 판매량도 전년 대비 323% 늘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샌들로 구성된 여름 컬렉션의 경우 지난해 4월 출시한 이래 한 달 만에 매출이 전년 대비 6배 증가했다”면서 “부츠 뿐 아니라 샌들, 슬리퍼, 레인부츠까지 인기를 끌면서 겨울 브랜드에서 사계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라고 말했다.
코르크 샌들로 유명한 독일 브랜드 버켄스탁도 디올, 발렌티노 등 명품과 협업해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스틸레토 힐을 고집하는 마놀로 블라닉조차 버켄스탁과 협업 신발을 내놨을 정도다. 버켄스탁은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시가총액은 11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매출은 20%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X세대(1970년대생)에게 유행했던 팀버랜드가 부활의 조짐을 보인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의 2024년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에 팀버랜드의 워커가 대거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