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삼성SDI 공장 부지 내 삼성물산 패션부문 구미 직물공장. 동그라미 속 건물은 직물사업 제조 직군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장. /이신혜 기자

“제일모직이 잘해서 삼성전자(005930)도, 삼성SDI(006400)도 성장한 것 아닙니까. 회사를 키운 모태 사업을 등한시 하는 것 같아 억울합니다.”

15일 낮 12시 30분쯤, 경상북도 구미시 삼성물산 직물공장에서 만난 50대 직원 A씨는 “빈폴, 갤럭시 등 자사 브랜드 납품 원단을 구미 공장 것으로 사용하고, (임대료가 부담 된다면) 공장 부지도 삼성 SDI 내 부지가 아닌 구미 내 다른 부지를 찾으면 해결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직물공장 외부에 마련된 쉼터에서 담배를 태우던 30대 직원 B씨는 “집이 여기(구미)인데 서울, 부천으로 옮겨가기도 애매하고 (전환 배치가 되면) 가서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물산(028260) 패션 부문의 전신인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물산, 제일제당에 이어 세번째로 만든 회사다.

고 이병철 회장은 1956년 직물 공장을 세웠고 남성복 시장에 진출해 갤럭시, 엠비오 등 남성복 브랜드를 출시했다. 비싼 수입 정장 대신 값싸고 질 좋은 양복 국산화를 강조하면서 일궈낸 성과다.

1975년 제일모직이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에 상장한 후 1986년에는 국내 최초 남성복 패션쇼 개최, 1996년 중국 톈진 직물 생산법인 설립, 2002년 상해법인을 설립하는 등 규모를 확장해나갔다. 지난 2014년부터 구미 삼성SDI 공장 부지 중 8000여평의 부지를 임대해 양복 브랜드의 원단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오는 6월 말부터 생산을 중단하고 12월 공장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2018년 이후 4년간 누적 적자가 80여억원에 달해 부득이하게 직물 사업을 종료한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구미 공장의 소재기획 부서 직원들이 일하는 건물. /이신혜 기자

기존에 구미공장에서 하던 직물 사업은 아웃소싱(외부 위탁생산)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직물 사업을 담당해온 인력에 대해서는 내부 전환배치 등 회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구미공장에는 90여명의 직원이 소속돼있다. 이중 70여명이 제조 직군이다. 대부분 고졸 채용을 통해 입사했으며 60%가 40~50대다. 삼성물산은 인력을 서울 도곡 본사나 부천 물류센터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은 “사실상 희망퇴직 수순 아니겠냐”며 불안해했다. 50대 직원 C씨는 “제조 직군의 경우 사무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 부천물류센터 쪽에서 근무할 텐데, 그곳은 사실상 희망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며 “유배 보내는 것도 아니고 부천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실상 회사 내에서 비전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SDI 구미사업장 정문 전경. /이신혜 기자

직원들과 상의 한 마디 없이 공장 폐쇄 통보를 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직원도 있었다.

D씨는 “삼성SDI 측에 연간 임대비용을 30억원 이상 주지 않으면 적자가 안 날 것”이라며 “적자가 난 건 경영진의 책임이지 사원들의 잘못이 아니다. 납품 원단을 같은 회사 것으로 써야 적자가 줄 텐데 경영진이 이태리 같은 외국 원단을 고집하니 구미공장이 죽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이번 사업 중단에 대해 3월 말쯤 설명회를 통해 직원들과 논의해서 최선의 방안을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