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신세계(004170)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패션에 치우친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의 사업 구조를 다각화 하기 위해 2012년 인수한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의 3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0% 넘게 급감했다. 한때 중국에서 샤넬만큼 품질이 좋으면서 가격은 낮아 '쁘띠 샤넬(작은 샤넬)'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인기였지만 궈차오(國潮·중국인의 자국 브랜드 소비 선호) 열풍과 정부의 과소비 자제 정책이 맞물리면서 올해 연 매출이 2018년 이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4.9% 증가한 3502억원, 영업이익은 전년도 70억원에서 141억원으로 두 배 확대됐다. 실적 개선을 좌우한 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해서 판매하는 아크네스튜디오, 셀린느, 끌로에 등 해외 패션과 딥디크, 산타마리아노벨라 등 해외 화장품이다. 해외 패션 매출이 15.4% 증가한 1100억원을 기록했고 수입 화장품 매출이 39.7% 늘어난 634억원이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 신세계그룹 제공

반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체 화장품 브랜드는 부진한 성과를 냈다. 이 회사는 2012년 국내 색조 메이크업 브랜드 비디비치를 인수하면서 화장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비디비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 씨가 2005년 출시한 브랜드로 신세계가 지분 70%를 60억원에 샀다. 이후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거나 해외 브랜드 지분을 인수해 현재 ▲연작 ▲스위스퍼펙션 ▲로이비 ▲뽀아레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기준 자체 브랜드 매출 95%를 책임진 비디비치는 3분기 매출이 182억원으로 전년 대비 52.8% 줄었다. 작년에는 분기 평균 300억원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올 들어 1분기 336억원, 2분기 192억원 등 감소세다. 메리츠증권, KTB투자증권은 비디비치 연 매출이 올해 1000억원을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디비치 매출은 2018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19년 2000억원을 넘고 작년에도 1300억원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측은 비디비치의 실적 부진에 대해 "매출 80%가 국내 면세점에서 발생하는데, 중국 정부가 자국 브랜드를 육성하고 내수를 진작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외국 기업의 화장품을 가져다 파는 따이공(국내 면세점에서 한국 제품을 사다가 중국에 파는 보따리상)의 활동이 위축됐다"며 "면세점 매출은 감소했으나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8일부터 개최되고 있는 K-박람회에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체 브랜드 비디비치와 연작이 전시된 모습. /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화장품 업계에선 국내 브랜드의 부진을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산하는 궈차오 열풍에서 찾고 있다. 중국에선 최근 2~3년새 자국의 고속 성장을 체감하면서 자라 자부심이 강한 1990년대생이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하며 국산품 애국 소비 열풍이 불고 있다. 작년부터 매장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중국의 화장품 편집매장 컬러리스트, 와우컬러, 하메이 등은 전체 판매 제품에서 중국산 비중이 50% 이상이다. 그동안 수입 브랜드 제품을 전면에 배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지도부가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살자)를 강조하면서 무분별한 소비를 경계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도 화장품 업계엔 부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월 공산당 회의에서 '공동부유' 실현을 위해 "부동산세 입법과 개혁을 추진하고 소비 단계에서 세수 조절의 강도를 높이고 소비세 징수 범위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득을 넘어선 소비와 과도한 투기 열풍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화장품 같은 사치품에 높은 소비세율을 적용할 경우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비롯한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11일 열리는 중국 최대 쇼핑 행사 광군제(光棍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예년만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알리바바와 징둥(京東)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올해 구체적인 거래 금액을 발표하지 않기로 하는 등 마케팅을 자제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본사에서 매년 11월 11일 0시부터 24시간 동안 쇼핑 축제 거래액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대규모 언론 설명회를 열었으나 올해는 대거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