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동일인(총수)을 법인 쿠팡아이엔씨(Inc)에서 김범석 쿠팡아이엔씨 의장 개인으로 변경하면서 파장에 관심이 모인다. 1986년 동일인 제도 도입 이후 약 40년 만에 미국 법인 최고경영자(CEO)가 동일인으로 지정된 첫 사례다. 재계에선 쿠팡이 기존 플랫폼 기업 프레임을 넘어 전통 대기업집단 규제 체계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변화로 보고 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뉴스1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자산 5조원을 넘기며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자연인 김 의장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유지해 왔다. 외국 국적 창업자가 지배하는 기업집단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공정거래법 시행령상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하려면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때와 기업집단 범위 차이가 없고 ▲자연인이나 친족이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으며 ▲친족이 국내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자연인 또는 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나 자금 대차 관계가 없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공정위는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변경해 지정할 수 있다.

그동안 재계에선 김 의장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를 적용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부사장이 최근 4년간 급여와 주식 보상 등으로 약 140억원을 수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공정위는 이날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서 "쿠팡은 올해 공정위가 실시한 현장점검 등에서 시행령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됐다"며 "김 부사장은 쿠팡 내 등급상 거의 최상위 등급에 해당하여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등급과 유사하다. 연간 보수와 대우가 등기임원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또 "주요 사업에 관해서 구체적인 업무 집행 방향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사실관계가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 계열사 범위 넓어지고 내부거래 규제 확대 전망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특수관계인 및 계열회사 범위 판단에 가장 큰 변화가 생긴다.

법인이 동일인일 경우 특수관계인 범위는 쿠팡이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거나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계열사 중심으로 한정된다. 반면 자연인이 동일인이 되면 본인과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등 특수관계인을 기준으로 계열 범위를 다시 살펴볼 가능성이 생긴다. 친족이 지배하거나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가 있다면 계열 편입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수관계인 거래 관련 공시 부담이 커지고 지분 구조 및 내부거래 점검도 강화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적용 여지도 넓어진다. 김 의장 또는 친족 관련 회사와 쿠팡 계열사 간 거래가 있을 경우 사익편취 규제 검토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 개인에게 지정 자료 제출 책임이 직접 부여되는 점도 변화되는 부분이다. 매년 친족 현황과 지분 구조 등을 담은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해야 하며, 고의로 누락 또는 허위 제출 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선 이번 조치가 국내 기업과의 규제 형평성을 맞추는 성격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 대부분이 총수를 동일인으로 지정받고 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쿠팡만 별도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도 이해진 창업자도 지분율이 4% 수준에 불과하지만 2017년 동일인으로 지정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 한미 통상 마찰 가능성도 거론... 쿠팡 "행정소송 통해 소명"

일각에서는 쿠팡 모회사인 쿠팡아이엔씨가 미국 기업이라서 한미 통상 마찰 또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측은 한국 정부의 쿠팡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조사 등을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이어왔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규제 틀이 해외 상장사에까지 적용되는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외국 자본에 예측 불가능한 시장이라는 부정적 신호를 보내 국내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쿠팡은 행정소송을 걸기로 했다. 쿠팡 측은 "쿠팡 아이엔씨는 한국 쿠팡 법인을 100% 소유하고, 한국 쿠팡도 자회사 및 손자회사를 100% 소유한 투명한 지배구조로, 김 의장과 친족은 한국 계열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사익편취 우려가 전혀 없다"며 "미국 상장사로서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요구하는 특수관계자 공시 의무를 준수하는 등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으며, 한국 쿠팡 법인은 변함없이 동일인 지정의 예외 조건을 충족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의 동생은 공정거래법상 임원(대표이사·이사·감사·지배인 등)이 아니며 한국 계열사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