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만 가면 진열대에 빨간딱지부터 찾아보는 요즘입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1+1′ 행사 상품을 사거나 여러 개를 사면 할인을 해주는 상품을 빠르게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얼마를 할인받았는지 영수증은 잘 확인하고 계신가요? 할인받은 줄 알고 물건을 구매했다가 알고 보면 할인 상품이 아닌 사례가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맥주입니다. 편의점 맥주는 4캔을 사면 할인이라고 통상 알고 있습니다. 시기별로 할인에 포함되는 맥주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4캔에 1만원, 4캔에 1만1000원 이렇게 묶어 할인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OB(오비)맥주의 스테디셀러 상품 카스(355ml)의 가격이 조금 이상합니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GS25 매장. 이 맥주는 1캔당 2250원에 판매하고 있고 11월 한 달간 4캔을 사면 9000원에 살 수 있다고 행사 내용을 적어뒀습니다. 할인 행사를 뜻하는 빨간 딱지도 함께 붙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 할인은 없습니다. 1캔을 사나, 4캔을 사나 1캔당 2250원을 지불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편의점 GS25의 상황만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편의점 CU, 세븐일레븐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할인도 하지 않는 맥주 상품에 할인 딱지를 붙여놓는 것일까요. 이를 알게 된 소비자 반응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편의점 3사 모두 표시가 그랬다고 설명하면 우롱당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서울 중구의 한 CU 아르바이트생 최모씨는 “포스기에 찍을 때도 할인 행사 제품이라고 떠서 가격 할인이 안 되는 줄은 몰랐다”면서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소비자는 속은 것 같다면서 불쾌해하지만, 편의점이나 맥주 제조사는 소비자를 속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합니다. 11월 한 달간 하는 행사 자체가 좀 복잡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편의점 3사가 하는 맥주 할인 행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번 행사엔 카스뿐 아니라 다른 국산·수입 맥주 60여 종류가 모두 참여합니다.
맥주 가격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보니 수입 맥주 A는 3000원, 또 다른 수입 맥주 B는 3600원입니다. 하필 빨간 딱지가 붙어있는 카스 가격만 2250원입니다. 같은 용량(355㎖)으로 이들을 모두 섞어서 4개를 사면 9000원에 판매한다는 행사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비싼 맥주만 골라서 산다면 할인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하필 할인 행사 딱지를 2250원짜리 카스에 붙여놔서 소비자들이 카스 4캔도 할인될 거라고 믿고 집어 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해당 용량 맥주는 할인이 아니지만 다른 국산·수입 맥주 60여 종은 할인 대상인 상황에서 대표 맥주에 행사 가격표 붙이다 보니 혼선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카스가 맥주의 대표 격이라 혼선이 벗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오비맥주 관계자도 “판매 1위인 카스에 붙여 할인 행사를 잘 홍보하려고 하던 것일 뿐 소비자를 속이고자 한 의도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 입장은 다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통 편의점에서 사는 국산·수입 맥주들은 4캔씩, 6캔씩 묶어서 사면 더 싸게 산다는 인식이 강하고, 가격표에도 빨간색이나 파란색을 넣어 눈에 확 띄도록 표시해 주는 게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면서 “그런데 이번 사례는 행사 상품이 아닌데 행사 상품처럼 표시한 것이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맥주 제조사나 편의점 운영사 모두 소비자 입장에서 오인할 만한 가격 표시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시정하기로 했습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걸 인지한 만큼, 유통업체와 협의해서 할인 가격표를 제대로 부착하거나 실질적으로 할인되는 품목에 정확히 표시하는 쪽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편의점 운영사들도 정확한 가격표를 부착하고 이를 공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요즘은 뭐든지 빨리빨리 해내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광속으로 흘러가도 내 지갑 속 한 푼을 잘 지키려면 조금은 시간을 들여서 계산하는 습관을 지녀야 할 것 같습니다. ‘실수’와 ‘의도 없음’을 앞세운 상술 속에 소비자가 모르는 새에 100원, 200원 푼돈이 술술 새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 종종 있는 탓입니다. 앞으로의 가격 부착 정책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