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에서 먹는 단감 맛은 껍질째 먹어도 달고 신선했어요. 서울에서 먹는 단감과는 차원이 다른 맛과 향이었죠. 김해 진영 명물인 단감을 기르는 농가의 자부심이 남다른 이유였어요.”

지난 18일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에 위치한 ‘오감농원’을 찾은 이상수(가명·69)씨는 산지에서 딴 단감 ‘상서’를 먹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상서는 일반적인 단감(부여)보다 일찍 따는 품종이다. 서울 시민인 이씨가 진영 단감의 고장까지 온 건 신세계백화점이 진행한 ‘로컬이 신세계’ 김해 지역 미식·문화 여행에 그의 딸이 당첨된 덕이다. 이번 여행 당첨 경쟁률은 700대 1이었다.

해당 농원의 규모는 약 9000평으로 650그루의 단감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농원을 운영 중인 이대호(54)씨는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단감이 진영 특산물이 된 건 이 지역 황토가 단감나무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줬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흔히 아는 단감은 ‘부여’라는 품종인데, 아직 안 익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여는 이상 기온으로 날이 덜 추워져서 색깔과 맛이 아직 안 든 상태”라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로컬이 신세계팀이 방문한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에 위치한 단감 농가 '오감농원'. 이곳엔 약 650그루의 단감나무가 있다. /민영빈 기자

◇지역 미식·문화 발굴 취지… “지역 판로 확대에도 도움”

로컬이 신세계는 전국 곳곳의 미식·문화를 발굴해 알리는 프로젝트다. 신세계백화점이 지속 가능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과 글로벌 트렌드 매거진 ‘시티호퍼스’와 협업해 진행하고 있다. 지역 식재료·음식·문화예술을 직접 경험해보는 기회를 통해 지역과 사람을 잇는 지속 가능한 연결점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경남 김해는 지난해 광주광역시와 올해 충남 태안·홍성에 이은 세 번째 프로젝트 지역이다.

앞서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9월 광주광역시에서 처음 선보였던 로컬이 신세계 프로젝트를 통해 광주식 떡갈비를 홍보했다. 올해 7월 말~8월 초에는 충남 태안·홍성을 찾아 태안 오징어·아말피 레몬과 홍성 토굴 새우젓 등을 활용한 지역 음식과 문화를 소개했다.

신세계백화점이 로컬이 신세계를 이어간 건 두 개의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고객 반응 때문이다. 당시 고객들은 신세계백화점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지역 식재료를 알고 활용할 수 있게 돼 좋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이 프로젝트가 지역 농가의 판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고객들이 로컬이 신세계 프로젝트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신선한 지역 식재료와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며 “지역 식재료를 생산·유통하는 지역 농가의 판로 확대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오후 7시쯤 김해 수로왕릉 앞 광장에서 열린 '뒷(Do-it) 고기 푸드 페스타'. 페스타 첫날 내린 폭우로 시민들은 지난해보다 많지 않았지만, 뒷고기로 만든 새로운 음식을 즐기는 시민들이 비를 피해 행사 부스 내부에 서 있었다. /민영빈 기자

이번 프로젝트에서 진영 단감만큼이나 집중한 지역 식재료 중 하나는 김해 뒷고기다. 김해 뒷고기는 눈살·볼살 등을 추리고 남은 돼지고기 부위를 모아 고깃집 ‘뒷문’으로 싼값에 서민에게 팔았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돼지머리에서 나오는 특수 부위로 김해의 별미로 꼽힌다.

이날 김해 수로왕릉 앞 광장에서 열린 ‘뒷(Do-it) 고기 푸드 페스타’는 뒷고기를 활용한 레시피 공모전에서 수상한 뒷고기 카레·버거·치차론 등을 선보이고 있었다. 김해 쌀과 단감 등을 활용해 만든 막걸리·수제 맥주 등도 시음할 수 있었다.

김해 시민인 김혜주(31)씨는 “삼겹살보다 많이 먹는 게 뒷고기다. 구워 먹는 것 외에 다양한 레시피로 새로운 맛을 구현한 게 신기했다”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김해 뒷고기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광객 최다정(40)씨는 “뒷고기 카레와 단감 맥주는 김해에 오면 다시 먹고 싶은 맛”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도예 체험을 위해 방문한 공방과 지난 19일 찾은 장군차밭과 찻집. /민영빈 기자

◇지역 문화·식재료 재해석한 다이닝·팝업 행사로 지속 가능성 추구

로컬이 신세계는 지역 식재료만큼 지역 문화를 체험할 기회도 마련했다. 철기 시대부터 도예 문화가 발달한 김해는 도자기가 유명하다. 매년 김해분청도자기 축제를 연다. 김해 진례면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변현란 (사)김해도예협회 부회장은 “김해의 도자기는 분청흙을 사용해 은은한 청색이 도는 게 특징”이라며 “그릇을 빚으면서 김해의 도예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지역을 알아가기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장군차도 김해에 숨겨진 식재료 중 하나다. 지난 19일 김해 주동리에 위치한 장군차밭에 방문한 최지은(41)씨는 “부산과 김해를 종종 왔어도 장군차는 처음 들어봤다”며 “찻잎을 덖어서 바로 우린 녹차도, 발효를 한 황차나 홍차도 전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김해의 맛’이었다”고 했다. 푸드트립앤컴퍼니 대표인 최씨는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상품 개발·연구에 힘쓰고 있다. 그는 김해의 여러 식재료를 구매하기도 했다.

이 외에 김해 무척산 한옥마을 고택 6채에서 하루를 숙박하면서 고택 특유의 정취를 느끼거나, 김해 동상시장과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다문화 거리에서 파는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등 식자재와 음식을 접하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본 김해의 식재료와 문화는 오는 11월 28일 아워플래닛에서 재해석한 음식 등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로컬이 신세계 프로젝트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신세계백화점도 오는 12월 중 김해 음식·문화가 깃든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를 열 방침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지역의 맛과 문화도 특정한 경우만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로컬이 신세계’는 잘 안 알려진 지역 특산물과 문화 등을 알리는 지역 상생 프로젝트로,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찾은 김해 동상시장과 다문화 거리에 다른 국가 식재료들이 진열된 모습과 지난 19일 하루 묵은 무척산 한옥마을 전경. /민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