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의 반목에 따른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자, 편의점 업계를 중심으로 안전상비의약품(상비약)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의료계는 편의점 내 상비약 품목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약물 오남용으로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픽=정서희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행 약사법상 편의점 판매 가능한 안전상비의약품은 20개 품목 이내 범위에서 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 판매 품목은 13개(해열진통제 5개·감기약 2개·소화제 4개·파스 2개)다.

이 중 타이레놀(80㎎·160㎎) 2종은 생산 중단돼 현재 11개 품목만 편의점에서 취급하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는 국민의 구매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약국 외 24시간 연중무휴 점포에 한해 상비약 판매를 허용한 제도다.

그러나 현재 상비약 품목 확대 논의를 위한 지정심의위원회는 구성조차 못 한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상비약 지정을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하고 지난해 새롭게 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시작조차 못 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도 대체약 추가 지정 필요성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의대 정원 확대 이슈가 불거지면서 해당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 결과, 2018년 마지막 지정심의위 회의를 끝으로 재개되지 않고 있다. 3개월 남짓 남은 올 하반기에도 지정심의위원회는 관련 논의나 활동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사제·제산제·화상연고 등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요구가 6년째 공전 중인 이유다.

이에 편의점 업계는 오는 7일 시작하는 국감을 앞두고 이번 주 내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가 핵심인 의견서를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안전상비의약품 진열대. /조선DB

편의점 업계는 편의점 판매 품목 확대가 12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이 심야나 공휴일에 소비자들의 의약품 구매 불편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며 “공공심야약국도 문을 닫는 새벽에 생길 수밖에 없는 의료 공백과 의료 대란의 장기화로 인한 상황에서 안전상비의약품 확대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안전상비의약품 매출은 2018년 504억원에서 지난해 832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중 가장 많은 판매가 일어난 시간대는 오후 9시부터 새벽 1시가 29.3%를 차지했다. 오후 5시부터 9시 시간대도 27.7%에 달했다. 실제로 올해 추석 연휴기간 CU의 안전상비의약품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49.4% 증가했고, GS25의 안전상비의약품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2.6%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건·의료업계는 안전상비의약품은 접근성의 용이보다 안전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사제나 제산제 등은 잘못 복용하거나 과하게 섭취했을 경우 변비나 세균성 설사 및 장염이 심해지는 부작용을 겪을 수 있는 탓이다.

대한의사회 관계자는 “지사제나 제산제, 화상연고 등도 안전상비의약품으로 확대해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움직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복용량이 과하거나 오남용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약품이라는 점에서 이들 품목 확대는 더 엄밀히 따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점 대상 실태 조사 결과 약 94%가 판매준수사항을 어긴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품목 확대는 잘못된 상황을 키우기만 할 뿐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위한 최선의 방향을 다시 고심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