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업체 티몬과 위메프의 지급 불능 사태를 놓고 플랫폼 업계의 ‘정산 관행’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플랫폼 업체들은 자율 규제를 통해 판매 대금 정산 주기를 입점 판매자와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정하고 있는데, 자율 규제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소비자로부터 구매 행위가 이뤄진 2~3일 안에 결제 대금을 받는 반면, 입점 판매 업체에게는 최장 70일까지 대금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이에 따라 대금을 전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31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건물. /연합뉴스

◇ 자율규제로 정산 주기 3~70일 ‘제각각’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각기 다른 정산 주기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70일까지 제각각의 정산 주기를 갖고 있다. 대부분 티몬·위메프와 마찬가지로 결제 대금과 운영 자금을 혼재해 운영한다.

오픈마켓 시장점유율 1위인 네이버쇼핑은 2020년 11월 도입한 빠른 정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3일 이내에 입점 판매자가 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반 정산을 이용하더라도 약 8일 만에 정산이 이뤄진다. 오픈마켓 사업자인 G마켓과 옥션, 11번가 등도 고객이 구매를 확정하면 바로 다음 날 입점 판매자에게 물품 대금 정산을 하고 있다. 대개 고객이 구매 확정을 하지 않더라도 배송 완료 후 7일 이내 자동 구매 확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최장 2주 이내에 정산이 이뤄진다.

쿠팡의 오픈마켓의 경우 입점 판매자가 주정산과 월정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어느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판매 대금을 모두 받는 데 까지는 40~60일이 걸린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조사 결과 소비자가 쿠팡 오픈마켓에서 상품을 구매한 뒤 구매 결정을 하면 판매자는 정산을 받는 데까지 평균 36일이 걸렸다. 문제가 된 티몬과 위메프는 최대 70일 이내에 대금을 정산해왔다. 티몬은 소비자가 구매를 확정한 달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40일 뒤에 거래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정산 체계를 운영해왔다. 위메프는 거래 발생월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두 달 뒤 7일에 거래대금을 정산해왔다.

정산 기준이 이처럼 제각각인 것은 플랫폼 업체와 입점 업체 간 정산 주기를 자율 규제로 맡겨왔기 때문이다. 자율 규제는 정부와 플랫폼업계, 소상공인, 소비자단체 등이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도출됐다. 이에 따라 오픈마켓 사업자는 입점 계약서에 대금 정산 주기와 절차를 명시하게 됐다.

◇ 與野 “정산 주기·판매 대금 전용 규제 필요”

하지만, 정산 주기가 긴 업체는 입점 판매자에게 지급할 대금을 전용하기 쉬운 데다 플랫폼 업체가 무이자로 자금을 활용하는 꼴이라면서 불공정한 거래 방식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전날(3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티메프 사태’와 관련해 “통신판매의 정산 주기를 개선해 달라는 사업자들의 요청이 꾸준히 있어왔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주기는 최대 70일인데, 이렇게 되니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게 아니냐”고 했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도 “티몬과 위메프는 판매 대금을 정산해주지 않고, 그것을 유용하다가 지급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입점 판매자들은 그 돈에 대해 선정산 대출을 받아 6% 이율을 내면서 쓰는 상황인데, 오히려 플랫폼 업체가 유용한 돈에 대해 이자를 얹어서 판매자에게 줘야 맞지 않냐”고 했다.

실제로 티몬과 위메프의 모회사인 큐텐(Qoo10)은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인수하는데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을 끌어썼다. 구영배 큐텐 대표는 전날 국회에 출석해 ‘위시 인수 자금 약 400억원은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이 아니냐’는 물음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헌승 의원은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을 향해 “(티몬과 위메프는)입점 판매자로부터 받은 돈을 두 달 가까이 지급하지 않는데 관행을 고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티몬과 위메프가 지난 5월부터 판매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대금은 약 1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 정부·국회 티메프 재발 방지 규제… 업계는 ‘난색’

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는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전상법, 전금법, 여전법 등 관련법 개정 검토에 나섰다. 이를 통해 판매자에게 돌려줄 돈을 플랫폼 업체가 활용하지 못하도록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정산대금 지급 주기 도입도 검토 대상이다. 정산 주기를 지나치게 길게 정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2021년에도 정산 주기와 관련해서는 ‘로켓정산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당시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유통업계의 상품 대금 지급 기한을 30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회도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 발의를 계획하고 있다.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에 이커머스 업체의 회계에서 운영자금과 판매대금을 분리하는 조항을 담아 발의할 예정이다. 판매대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규제 도입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커머스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의 본질은 구영배 큐텐 대표의 일탈 행위”라면서 “구 대표는 모든 이커머스 업체가 판매대금을 전용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다른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 역시 “큐텐이 판매대금을 전용할 수 있던 것은 각 사에 존재하던 재무 조직을 다른 회사에 이관시켜 운영해왔기 때문”이라면서 “위시 인수에 판매대금을 쓴 것은 배임의 소지가 있는 행위로 회사의 각 조직은 물론 이사회와 감사가 제대로 기능만 했더라도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들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만큼 회계 분리나 에스크로 등의 대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티메프 사태가) 큰 사안인 만큼 규제 요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규제 도입은 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면밀하게 검토를 거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