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사과에 이어 배, 복숭아 등 국산 과일 가격이 올해 금값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과·배·복숭아 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냉해 피해가 예상되면서다.
이에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비상에 걸렸다. 국내 농가뿐 아니라 직접 해외로 상품기획자(MD)들을 파견해 수입 과일 조달을 확대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26일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과수생육품질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올봄 과일나무의 꽃 피는 시기가 평년보다 최대 10일 이상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과꽃은 최대 11일, 배꽃은 9일, 복숭아꽃은 12일 빨리 필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봄꽃은 이미 평년보다 이르게 개화했다. 특히 사과꽃보다 열흘가량 일찍 개화하는 벚꽃은 온난화 영향으로 개화 시기가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다. 기상청 계절관측에 따르면, 23일 경남 창원과 제주에서 벚꽃 개화가 관측됐다. 꽃샘추위 영향으로 당초 예상보다는 개화 시기가 다소 늦어졌지만, 평년과 비교하면 각각 6일과 2일 이르다.
사과·배·복숭아 등 과수는 꽃이 빨리 피면 된서리를 맞아 열매 맺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급감한 것도 냉해 피해 때문이다. 기상청은 3월 마지막 주 기온이 평년(7.3~9.1℃) 수준을 웃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과일나무 냉해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주요 과일나무 개화가 빨라지면서 여름·가을 과일 가격 상승은 ‘뉴노멀’이 되고 있다. 최근 5년간 2022년을 제외하고 과수 저온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피해 규모도 2019년 1315㏊에서 2020년 7627㏊, 2021년 6616㏊, 2023년 9779㏊로 점차 커지는 추세다.
이상기후는 사계절 내내 과일 작황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름 내내 폭염·폭우·병충해가 심했고, 겨울 기온과 강수량, 강수일수도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겨울철 전국 평균기온은 섭씨 2.4도로 평년(0.5도)보다 1.9도나 높았고, 강수량은 236.7㎜로 평년(89㎜)의 2.6배를 넘었다. 강수일수도 31.1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올봄도 비가 잦아 일조량이 문제다.
사과와 배 등 대표 국산 과일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지역도 줄어들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현재의 속도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경우 사과 재배 적지 지역은 2020년 4만6980㎢에서 2050년 1만3206㎢로 줄어든다. 2090년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1213㎢)만 사과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 생산량도 전년보다 26.8% 줄었다. 냉해 피해가 생산량 감소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포도와 복숭아는 2050년까지 재배 면적이 늘다가 결국 2090년에는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국산 과일 생산 물량이 급감하면서 저장에 나서도 상시 판매가 어려울 정도로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서다.
이마트(139480)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우선 수입 과일의 수입량을 대폭 늘려 과일 수요를 분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아예 수입 과일 직수입 물량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과일 물가 폭등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 과일에 할당관세를 시행하는 것에 발을 맞춘 것이다. 현재 오렌지의 경우 10%, 나머지 수입 과일 5종에 대해선 관세율 0%가 적용된다.
이마트는 이달 수입 과일 매출 1, 2위 품목인 바나나와 오렌지 가격을 20% 할인하고, 파인애플, 망고, 망고스틴 등 수입 과일도 최대 20% 할인 판매하고 있다. 오렌지의 경우 물량을 평시 대비 50% 더 확보했다.
롯데마트도 수입 과일인 체리와 망고스틴 물량을 기존 대비 50% 이상 늘리기로 했다. 4월에는 무관세인 뉴질랜드 키위도 본격적으로 수입해 판매할 예정이다.
홈플러스도 썬키스트 측과의 협의를 통해 오렌지 원물을 늘리고, 과일 수입국을 다변화해 수입 과일 품목을 강화하기로 했다. 망고스틴 도입량은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릴 예정이며 체리, 키위도 추가 물량을 확보하는 중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올해 일조량이 부족하고 이상 기후로 국산 과일 전반 수급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말 팔고 싶어도 팔 물건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수입 과일을 최대한 저렴하게 확보해 수요를 분산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