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인종의 여성을 등장 시킨 설화수 광고 이미지. /설화수 인스타그램

“용기에 한자 빠지고, 광고엔 흑인 모델이... 설화수 맞아?”

아모레퍼시픽(090430)의 럭셔리 화장품 설화수가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리브랜딩의 연장선으로, 기존의 한방 화장품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BI)를 갈아입었다. 세계화(Global)와 디지털(Digitalng) 고객을 염두에 둔 변화다.

◇확 바뀐 설화수·이니스프리... 글로벌 고객 눈높이 맞춘다

1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설화수는 이날부터 대표 제품인 윤조 에센스 6세대 버전을 출시한다. 1997년 설화수 출범과 함께 출시된 윤조 에센스는 5회에 걸쳐 개편을 거듭, 설화수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윤조 에센스를 10병 이상 사용한 고객은 51만 명으로, 지금도 10초에 한 병씩 팔리고 있다.

6세대 제품은 5세대와 비교해 용기 외관이 크게 바뀌었다. 한자 서예 로고 대신 짙은 오렌지색 영문 로고를 키웠고, 달항아리 백자에서 따온 둥글고 경계 없는 디자인으로 한국적인 미감을 담았다. 기존보다 유리 중량을 줄이고 재활용 플라스틱 뚜껑을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광고도 달라졌다. 한방 화장품이라는 ‘성분’을 강조한 것에서 아시아, 백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의 젊은 모델을 등장시켰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 9월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를 기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리브랜딩 작업을 진행해 왔다”며 “이번 변화도 그 일환으로, 글로벌 고객 대상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설화수가 2020년에 출시한 윤조에센스 5세대(왼쪽)와 올해 출시한 윤조에센스 6세대.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도 최근 BI를 변경했다. 2018년 이후 5년여 만으로, 기존보다 단조롭고 굵은 글자체와 채도가 높은 액티브 그린을 적용했다.

소문자만을 쓴 기존 로고와 달리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 ‘InnIsFree’라고 표기한 것이 눈길을 끈다. 사측은 “대문자와 소문자의 조화로 생동감과 자신감 있는 이미지와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가치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탈중국’ 본격화... 로고 갈아입고 세계로

두 브랜드 모두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중에서도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다. 그간 몇 차례 재단장했지만, 이번 개편은 특히 변화 폭이 컸다. 그런 만큼 기존 이미지에 익숙한 일부 국내 고객들 사이에선 새로운 이미지가 “생경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이 대표 브랜드의 ‘파격 변신’을 단행한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실적 부진 때문이다.

그래픽=유지영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18년 6조782억원에서 지난해 4조495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495억원에서 2719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자회사인 이니스프리 역시 매출이 2016년 7679억원을 찍은 후 지난해 2997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965억원에서 324억원으로 6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중국 내 자국 브랜드 선호 등으로 매출 의존도가 높았던 중국 시장의 소비가 둔화한 것이 원인이다.

결국 ‘탈중국 전략’의 일환으로 아세안 지역과 북미 등에서 인지도가 높은 설화수와 이니스프리가 변화의 선봉에 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로고 변화에서 그런 의도가 감지된다. 과거 중국을 공략할 땐 화려한 용기와 광고가 선호됐으나, 중국 외 해외 시장 및 젊은 층 공략을 위해 단조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이런 추세는 명품 업계에선 보편적이다. 앞서 버버리,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이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식이 없고 굵은 산세리프체(일명 고딕체)로 로고를 바꾼 바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명품 소비가 온라인으로 옮겨가자, 미디어상에서 식별하기 좋은 로고로 개편한 결과다.

설화수와 이니스프리 역시 중국 등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 판로를 전환하는 추세다.

2018년 선보인 이니스프리 로고(왼쪽)과 5년여 만에 바뀐 새 로고. /이니스프리

증권가에선 작년까진 아모레퍼시픽 해외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지만, 올해부터는 중국 외 해외 매출 비중이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많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설화수의 경우 이른 나이부터 기능성 화장품에 관심을 갖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핵심 타깃을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라며 “이를 통해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선망성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이런 변화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 서민정 럭셔리 디비전 AP팀 담당의 승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해석도 나온다. 특히 서 담당이 이니스프리 지분 18.18%를 보유한 만큼, 이니스프리의 기업가치가 커지면 매각 등을 활용해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분을 늘려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설화수는 독립적인 브랜드 유닛에서 운영돼 럭셔리 디비전 소속인 서 담당과 관계가 없으며, 이니스프리 역시 서 담당이 지분을 보유했을 뿐 경영권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