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청계천로의 한 건물, 지하 1층의 텅 빈 공간에 들어가 혼합현실(MR) 단말기를 착용하니 검푸른 해저(海底)가 펼쳐졌다.

동굴 사이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해파리와 대형 조개, 괴팍한 형태의 심해어가 반긴다. 눈앞에 뜬 버튼을 누르니 향기를 맡아보라는 음성이 나왔다. 안내에 따라 특정 자리로 이동하니 시원한 바다 내음이 났다.

“우어어~”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머리 위로 커다란 고래가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이 재판장을 헤엄치던 범고래를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메타버스 전문 기업 더블미가 조성한 확장현실(XR) 전시 ‘더 케이브(The Cave)’의 풍경이다.

지난달 14일 이곳에서 만난 김희관 더블미 대표는 “메타버스를 현실세계로 불러와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에 직접 꾸미고 다른 사용자가 공유할 수 있는 ‘현실세계(Real-world) 메타버스’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기획했다”라고 설명했다.

김희관 더블미 대표.

◇‘우영우 고래’가 현실로... 현실로 나온 메타버스

2015년 창업한 스타트업 더블미는 실감 획득 기술을 기반으로 현실세계 메타버스 플랫폼 ‘트윈월드(TwinWorld)’를 2020년 11월부터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메타버스 플랫폼이 가상의 공간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데 반해, 트윈월드는 실제 공간에 가상의 3차원(3D) 이미지를 덧입혀 보여준다. MR 단말기를 쓰면 실제 공간 위에 가상현실(VR)이 겹쳐서 펼쳐진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단말기 홀로렌즈를 통해 서비스 중인데, 출시 이래 현재까지 28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지금까지 홀로렌즈 누적 판매량이 30만 대가 안 되는 걸 고려하면, 단말기 사용자 상당 수가 트윈월드를 이용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은 컴퓨터 안에 갇혀 있어 몰입도가 낮았는데, 이를 끄집어내 현실세계에 메타버스를 집어 넣는 플랫폼을 개발했다”라며 “메타버스를 경험하기 위해 특정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갈 필요 없이 현실세계에 가상 공간을 가져오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트윈월드 출시 전인 2019년,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V&A)에서 열린 `홀로그램 수녀` 전시에 자사의 기술을 적용해 성장성을 시험했다.

관람객들이 MR 단말기를 착용하고 전시장에 들어가면 15세기 복장을 한 실물 크기의 3D 수녀가 나타나 전시장을 돌며 관람객들에게 전시 내용을 설명해 주는 형태였다.

전시가 끝나자 유럽의 여러 박물관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요청해 왔다. 이에 김 대표는 사용자가 혼합현실 공간을 직접 꾸미는 현실세계 메타버스 서비스가 승산이 있다고 보고 1년여간의 준비 끝에 트윈월드를 개발하게 됐다.

◇오프라인 점포를 메타버스로... 집객 효과 ‘톡톡’

트윈월드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유통업체의 경우 오프라인 점포를 메타버스로 만들어 점포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다. 쇼핑몰 수직공간(보이드·Void)에 가상의 아쿠아리움을 조성하거나 디즈니랜드를 옮겨오는 식이다.

실제 더블미는 지난해 7월 유럽 부동산·유통기업 유니베일 로담코 웨스트필드(URW)와 손잡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쇼핑몰 웨스트필드 내 150m 길이 보행로에 대형 수족관을 조성했다.

지난해 7월 더블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복합쇼핑몰 웨스트필드에 조성한 '아쿠아 바이 트윈월드'. /더블미

사용자들이 홀로렌즈 단말기를 착용하거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수족관을 꾸미거나 조개 모양의 쿠폰을 잡아 인근 상점에서 쇼핑할 수 있었다. 고객들의 호응이 좋자 웨스트필드 측은 점포를 옮겨 시연을 확대했다.

김 대표는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은 가상공간에 가상 상점을 입점시키는 형태라 방문객이 많아도 실제 매출과는 연결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라며 “트윈월드를 활용하면 고객들의 경험 몰입도를 높여 오프라인 점포에 더 오래 체류하게 하고 구매를 촉진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오락, 관광, 부동산 개발, 교육 분야에서도 확장성이 기대된다. 현재 더블미는 부산시, 한양대와 초·중등학교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트윈월드 기반 교육 사업을 진행 중이며,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관광용 현실세계 메타버스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또 서울시설공단과는 스포츠 시설에 적용하는 현실세계 메타버스 사업을 하고 있다.

리얼월드의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된다. 사용자 누구나 쉽게 자신의 공간을 꾸미고, 이를 통해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수익은 기업, 정부 등이 의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얻는다. 출범 2년여 만인 올해 연 매출 1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블미가 진행 중인 전시 '더 케이브 서울' 전경. /더블미

지난 4월에는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삼성벤처투자, NH투자증권, BNK캐피탈, 타임폴리오 등이 참여했다. NH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과 상장 주관사 계약도 맺었다. 이를 통해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MR 단말기 보급이 가속화하는 만큼 리얼월드의 사용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얼월드를 서비스하는 홀로렌즈2의 경우 가격이 3500~5199달러(약 490만~730만원)로 비싸 확장성이 제한됐지만, 최근 메타, 삼성전자, 애플 등이 MR 단말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투자회사 아크인베스트먼트는 현재 10억달러(약 1조4110억원) 수준인 AR·MR 시장이 2030년 1300억달러(약 183조43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김 대표는 MR 단말기 보급 속도에 맞춰 현재 서비스 중인 홀로렌즈를 넘어 다양한 단말기에서 리얼월드를 서비스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유튜브를 보면 사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올리고 광고 수익도 내는데, 트윈월드가 추구하는 바도 같다”라며 “메타버스계의 유튜브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