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롤렉스 등 명품 브랜드의 오픈런(매장이 문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것)을 불러 일으켰던 리셀(resell·재판매) 시장이 최근 정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리셀 시장의 대표 인기 제품인 샤넬 미디엄 클래식 백과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거래가 상승세가 멈췄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주식, 코인 등 자산가격 하락과 관련 있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생 초기 자산가격이 급등하며 명품 시장으로 유입된 새로운 소비계층이 지출을 줄이거나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에 따르면 샤넬 미디엄 클래식 플랩백은 올해 1월까지 1200~1300만원에 거래됐다. 당시 공식 판매가격이 1124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최소 10%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러나 2월부터 거래가격이 1100만원대로 떨어지더니 현재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리셀가격이 공식 판매가격(1239만원)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내려간 것이다. 신제품을 구입해 바로 판매를 해도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논데이트의 리셀가 추이도 비슷하다. 올해 1월 공식 판매가격은 1142만원인데 크림에선 1700만원대에 거래됐다. 그 이후로 거래가가 계속 낮아져 현재 1500~1600만원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롤렉스는 다른 명품 브랜드와 달리 스위스 본사가 공급물량을 철저하게 제한해 돈이 있어도 못사는 명품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가격 하락 속도가 샤넬에 비해 더딘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리셀 시장은 코로나19 기간 주요 거래 품목인 명품 잡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함께 커졌다.
명품 수요가 늘어난 건 해외 여행이 막힌 데 따른 보복 소비 심리와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지출 여력 확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백화점 4사 점포 중 연 매출이 1조원을 넘은 곳은 2020년 5개에서 작년 11개로 늘었다. 이중 7개가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는 연초 3000을 사상 처음으로 돌파하고 전체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11.3% 늘었다. 코스닥도 20년 만에 1000을 넘었고 시가총액은 15.7% 확대됐다.
2020년 1만달러(1400만원) 수준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작년 11월 사상 최고가인 6만9000달러(1억원)까지 치솟았다.
명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며 시장에 리셀을 재테크로 활용하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2020년 출범한 크림은 작년 연간 거래액 4000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윤성국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명품 소비는 자산가격과 연동되는 경향이 강했다”며 “코로나19 시기 자산가격 상승에 힘입어 새롭게 명품 시장에 진입한 계층 일부가 이탈하며 투기 수요가 감소해 리셀 가격이 둔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명품 수요 둔화 가능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기존 주 고객층인 40~50대 고소득층이 지출을 계속한다고 해도 새롭게 시장에 진입했던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자)가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백화점 업체들은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대체불가능토큰(NFT), 친환경 등 MZ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키워드와 관련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004170)백화점은 올 여름 메타버스 플랫폼 젭(ZEPP)과 손잡고 메타버스로 문화센터 강의를 진행했다. 자체 캐릭터인 푸빌라를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1만개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이달 두나무의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블록 안에 생명의 소중함을 주제로 만든 NFT를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현대백화점(069960)은 이달 신촌 유플렉스 4층 전체를 업계 최초의 세컨핸드(secondhand·중고품) 전문관으로 새단장하면서 친환경 빈티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리그리지를 입점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