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매업자로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당신은 경험 산업에 있습니다. 메타버스 덕분에 여러분은 소비자에게 이전엔 할 수 없었던 몰입도 높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죠. 이 기술은 앞으로 소매업계의 우선순위를 ‘경험’으로 옮기게 될 겁니다.
던컨 와들(Duncan Wardle) 전 월트디즈니컴퍼니 혁신 및 창의성 부문 총괄사장은 31일 ‘2022 유통산업포럼’의 기조연사로 나서 “모든 것은 경험에 달려 있다”라며 “유통업계는 팬을 위한 몰입을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와들은 ‘팬덤이 주도하는 新소비혁명’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에서 ‘유통산업에서 창의와 혁신을 찾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디즈니랜드 리조트 홍보 부문 부사장에 이어 월트디즈니 글로벌 PR 부문 부사장을 지낸 후 월트디즈니 혁신 및 창의성 부문 총괄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ID8를 창업해 기업 혁신 분야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고객은 ‘손님’, 직원은 ‘출연자’… 미키마우스가 살아남은 비결은
베티붑, 뽀빠이, 바니와 친구들… 디즈니의 수많은 캐릭터 중 미키마우스만 살아남은 이유는 미키마우스를 직접 만나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바로 디즈니랜드 테마파크다. 1954년 월트디즈니사의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경험 경제의 등장을 예견하고 영화를 극장 밖에 꺼내 3차원 공간으로 구현했다. 그는 고객을 ‘손님’으로, 직원을 쇼를 위해 캐스팅된 ‘출연자’로 재구성해 몰입도를 높였다.
와들은 “고객이라 불리는 것과 손님으로 대우받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경험”이라며 “월터는 ‘경험이 먼저다, 소매는 따라온다’라는 철학으로 디즈니랜드를 조성했다. 경험은 단순한 상품이나 서비스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리포터의 지식재산권(IP)을 구매해 호그스미드 체험관을 개장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사례를 들었다. “해리포터가 개봉하기 전 그곳에서 팔던 코카콜라의 가격은 50센트(약 600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기념품 머그에 담겨 8달러 50센트(약 1만3000원)에 부가세가 붙어 판매된다. 2센트(약 200원)짜리 플라스틱 막대기 역시 덤블도어의 지팡이가 된 순간 65달러(약 7만8000원)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결국 경험이 키워드다.”
유통업체가 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즈니의 경우 끊임없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새 캐릭터를 주제로 한 놀이기구를 테마파크에 조성했다. 또 공식 팬클럽 D23을 창립하고 2년 주기로 ‘D23 엑스포’를 열어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 모든 디즈니의 팬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도록 지원한다.
◇디즈니랜드 수익을 올린 건 입장료가 아니라 ‘매직밴드’
디즈니는 팬들과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고객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디즈니랜드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꼽는 가장 큰 고충은 ‘줄 서기’다. 입장할 때도, 놀이기구 탈 때도, 음식과 기념품을 구매할 때도 긴 줄을 서야 했다.
이에 디즈니는 2014년 수 십억 달러를 들여 RFID(전자태그) 칩이 내장된 ‘매직밴드(MagicBand)’를 도입했다. 손목에 두른 매직밴드 하나면 디즈니랜드 리조트와 호텔을 체크인 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게다가 스타워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다.
와들은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면 입장료를 3% 올려 그만큼을 더 벌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덕에 매직밴드를 찬 디즈니랜드의 손님은 평균 2시간의 여가 시간이 더 생겼고, 이는 역대 최대 재방문과 추천 의사로 이어졌다”라고 했다.
와들은 향후 도래할 메타버스 시대에는 몰입형 경험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즈니는 최근 테마파크에 증강 현실 캐릭터를 구현하는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신데렐라를 만나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다.
그는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소매업계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오고 있다”라며 “3년 후에는 원격으로 매장을 둘러보고 쇼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소매 업계에선 접근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몰입형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들은 창의와 혁신을 찾기 위해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라고 조언했다. 그가 제안한 방법은 ‘만약에’라는 가정법이다. 편견 없이 업계의 규칙을 나열하고 질문해 답을 찾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1940년 ‘만약 영화를 밖으로 꺼내면 어떨까?’라고 자문했고, 그 결과 3차원의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
2019년 디즈니가 공개한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도 2016년 에볼라 조류독감과 사스를 겪으며 했던 질문(만약 테마파크를 폐쇄해야 한다면?)에서 출발했다. 덕분에 디즈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테마파크를 폐쇄하면서 2020 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 매출이 6% 줄어드는 선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기간 테마파크 매출 비중은 전년 37%에서 23%으로 줄었지만, 디즈니 플러스의 매출 비중은 24%로 급증했다.
와들은 “픽사의 경우 ‘계획되지 않은 협업’을 철학으로 내세운다”라며 “연구개발(R&D) 팀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분기별 성과가 아닌 창의성으로 평가 받는 것이다. ‘작년에 시도했기에 안 된다’라는 말 대신 ‘네, 그리고’라는 말을 쓴다면 아이디어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